작성일 : 19-08-22 10:39
“뭐든 전문적으로 수집하면 역사에 남을 수 있죠”-여주시립폰박물관 이병철 관장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06623.html [2]

(사진1) 이병철 관장 왼쪽 전시관에 백팩 형 무선통신기기 SCR-195가 보인다. “워키토키 1호입니다. 차나 말이 아니라 사람이 운반한 첫 무선통선기기이죠. 휴대전화의 조상이죠.” 그는 “폰박물관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끊임없이 유물을 사야하는 박물관”이라고도 했다. “구입 예산이 많지 않아 기업에 신형 기증 요청도 합니다. 엘지전자는 바로 보내주는 데 삼성전자는 규정에 없다고 거절하더군요.” 강성만 선임기자
(사진2) <수집가의 철학> 표지
(사진3) 세계 최초 휴대전화 ‘다이나택 8000X’. 천년의 상상 제공
(사진4) 여주시립폰박물관 전시실에서 이병철 관장이 포즈를 취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짬] 여주시립폰박물관 이병철 관장


이병철 여주시립폰박물관장은 수집가다. 경기 여주시 점동면 자택에 엘피 2천장, 영화 비디오테이프 3천개, 책 1만2천여권, 오페라 레이저디스크 500장을 소장하고 있다. 우표도 초등학교 5학년부터 전문적으로 모았으나 군 시절에 다 도난당했단다.
2000년 들어 그의 수집 본능이 향한 곳은 휴대전화다. 아내의 오랜 휴대폰과 같은 기종을 찾아 헤매다 소중한 산업 문화유산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2008년에는 자택에 세계 최초로 사립 폰박물관을 열었다. 2012년과 2014년엔 수집품 2천여점과 3천여점을 각각 울산시와 여주시에 기증했다. 울산시에는 훗날 국립산업박물관을 유치하면 기증품을 그곳으로 넘긴다는 조건을 달았다. 여주시립폰박물관은 3년 전 그의 기증품으로 문을 열었다. 박물관 직원은 모두 7명이며 연간 2만명이 관람을 하고 있다.

이 관장은 최근 <수집가의 철학>(천년의 상상)이란 책을 냈다. 휴대전화 수집에 얽힌 이야기와 수집 유물로 살핀 휴대전화의 역사를 담았다. 20일 박물관에서 저자를 만났다.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아내의 쓰지 않는 휴대전화 모델을 꼭 찾고 싶었죠. 처음부터 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체계적으로 모았어요. 2007년에 최초 국산 휴대전화(삼성전자 SH 100A)를 어렵게 구하고 박물관을 열기로 결심했죠. 전화기 주인에게 세번 간청해 물건을 보고 세번 만나 끈덕지게 조른 끝에 구했어요.”
그는 폰박물관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휴대전화 박물관으로 소개했다. 휴대전화 역사에서 중요한 유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갖췄다고 자부했다. 수출이나 개발에서 ‘국산 최초’ 수식어가 붙는 제품은 물론 세계 최초 휴대전화 ‘다이나택 8000X’처럼 휴대전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도 두루 모았다. ‘다이나택 8000X’의 인터넷 경매전에 나설 때는 자판을 번개 같은 속도로 두드릴 수 있는 대학생의 손까지 빌렸단다. “치밀한 전략 끝에 경매 마감 4초 전에 학생이 경매가를 입력했죠.” 그를 가장 기쁘게 한 수집물은 ‘워키토키 1호’로 불리는 ‘SCR-195’(1938년)이다. “사람이 처음으로 운반한 백팩형 무선통신 기기입니다. 유선과 휴대전화의 연결 고리이죠. 이게 나오기 전에는 차나 말이 운반했어요. 우연히 손에 넣은 뒤 너무 기분이 좋아 심장이 쿵쾅거렸죠.”

지금은 인터넷 경매를 하지 않는단다. “수집을 한 뒤로 두 눈 모두 수술했어요.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너무 집중해서죠.” 그가 적잖은 돈을 들여 모은 수집품을 다 내놓은 데는 재정적 한계를 느낀 탓도 있단다. 예컨대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폰 2G는 현재 미개봉 상태로 2500만원에 거래된다. 그는 한국에서 아이폰을 쓰기 2년 전인 2007년 이 제품이 나왔을 때 미국에서 150만원을 주고 샀다. “빚이 늘어 더는 못 사겠더라고요. 그때 마침 여주 시장이 박물관 건물이 있다고 전화를 했어요. 패가망신한 수집가들이 많아요. 빚은 지금 사는 집을 팔아 갚으려고요. 작은 집으로 옮겨야죠.”
‘나비 연구가 석주명(1908~50), 탐험사, 여성 인물, 휴대전화의 역사.’ 그가 한국에서 자신이 최고 전문가라고 자신하는 주제들이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년 10년 가까이 다니던 한국은행 산하 저축추진중앙위원회에서 쫓겨났다. “홍보 담당으로 사보 <열매>를 만들던 시절이었죠. 손봉호 교수 기고 글에 정부 비판 내용이 있었어요. 이걸 빌미로 저한테 ‘빨갱이’라며 나가라고 하더군요.”

초등시절 우표부터 시작한 ‘수집광’

책·엘피·비디오테이프·디스크 등
첫 국산 휴대전화 ‘삼고초려’ 구입 계기
2008년 자택에 세계 최초 사립 폰박물관
2016년 여주시에 기증해 연 2만명 관람

기자·저술 활동…‘수집가의 철학’ 출간

직장을 잃고 1년이 지나 첫 저술 <석주명 평전>을 냈다. 40대엔 탐험사 공부에 매달려 <미지에의 도전 1, 2, 3> <세계탐험사 100장면>을 썼다. 50대엔 여성인물을 다룬 <참 아름다운 도전-세상을 뒤바꾼 여성들 이야기 1, 2>를 출간했다. “여성인물 책은 간호사 대상 잡지의 청탁을 받고 썼어요. 그때 위인전이 100권이면 남자는 95권이고 여자는 5권을 넘지 않았어요. 퀴리 부인, 헬렌 켈러, 신사임당, 유관순, 마더 테레사 정도였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외국 자료를 샅샅이 뒤져 썼어요.”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도 한 그는 2005년 마지막 직장 <시사저널>을 나와 여주 산골로 들어갔다. “<시사저널>에 있을 때 기자들이 저를 ‘녹색펜 교사’로 불렀어요. 편집하다 좋지 않은 글은 제가 직접 고치곤 했는데 나중에 회사가 아예 그 일을 맡겼죠. 제 마지막 직책은 편집부장과 교열위원이었죠.”

폰박물관장의 휴대전화 사용은 어떨까? “플래시 기능이 가장 요긴해요. 집이 산 속에 있어서요. 문자 메시지는 쓰지만 카톡이나 에스앤에스는 안 합니다.” 그는 산업유산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만큼이나 기계에 함몰되는 세상을 경계한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국가는 개인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마음대로 하죠. 무서워요. 기계에 함몰되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세상이 되어야죠.”
그는 책에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된다고 썼다. “유적, 유물이나 기록이 남아 역사가 됩니다. 지금 시대에 보존하는 유물도 마찬가지죠. 수집을 전문적으로 하면 누구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합니다. 지금 국공립 박물관은 고대사 유물 모으기도 바빠요. 미시나 생활사 쪽은 다 사립이 하고 있죠.”
그의 소망 중 하나는 한국에도 독일 뮌헨의 산업기술 전문 박물관(독일 박물관)처럼 산업기술 시대의 유물을 두루 갖춘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이다. “1955년부터 98년 사이 우리가 만든, 역사 가치가 높은 산업기술 유물 288개 가운데 45%가 사라졌다고 해요. 독일은 산업박물관을 연 뒤로 기술자를 더욱 우대했다고 하더군요.”



-강성만 선임기자. 한겨레신문. 2019.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