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3-21 14:17
집 밖의 내 서재’에서 또 다른 ‘책의 공간’을 체험하다 유료도서관 ‘소전서림’의 낯선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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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도서관 ‘소전서림’의 낯선 실험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문학 전문 유료 도서관 ‘소전서림’은 방음·조명·의자 등 독서환경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왼쪽에 보이는 거위도 장식물이 아니라 실제 앉을 수 있는 의자(구스 체어)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가방을 라커에 넣었다. 휴대전화와 필기구만 챙겼다. 서가 구경을 시작했다. 장르·국가·작가 순으로 새 책들이 빼곡하다. 한 권 뽑아 들고 리클라이너에 누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고·요.

지난 11일 서울 청담동 소전서림(素전書林)에 갔다.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란 뜻이다. 지난달 22일 문을 연 문학 도서관. 관내 열람만 가능하고 대출은 안 된다. 게다가 유료다. 종일권 5만원, 반일권 3만원. 입장료에는 여기서 열리는 공연·강연비가 포함돼 있다. 연간 회원(가입비 66만원)은 입장료가 50% 할인된다.

건물은 원래 미술관이었다.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가 설계했다. ‘큐브’가 모티프다. 1층에는 카페 겸 와인바가 자리하고 있다. 좁고 깊은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문학을 중심으로 철학·예술·인문학 서적 4만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강영희 보안책방 운영자, 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이사, 박혜진 비평가, 백영란 역사책방 대표, 서효인 시인,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현우 서평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등이 도서 선택에 참여했다.

책만 읽는 곳 아니라 그림·가구 등 공간에서 오는 즐거움도 제공
황보유미 관장 “지원 없이 자력으로 살아남으려면 입장료 불가피”
“새로운 문화 경험” “일종의 프레스티지 비즈니스” 엇갈린 평가 속
어떤 프로그램 운영하고 독자들 참여시킬 지가 성공의 관건 될 듯

좌석 종류도 다양하다. 평범한 소파부터 1인용 좌석과 리클라이너까지 마련돼 있다. 문학과 관련된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도 갖췄다. 상당수 의자는 프로젝트팀 ‘ar3’(이정형·임지수·최병석)에 맡겨 제작했다. ‘다이스 체어(주사위 의자)’는 문자 그대로 주사위가 돌듯 움직인다. 앉는 사람의 무게중심에 따라 앞뒤로 기울어지는 게 특징이다. 중정(中庭)에는 소음이 나지 않도록 설계된 ‘스윙 체어(그네 의자)’가 놓였다. 고개를 들면,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하에 위치한 탓에 자연광이 부족할까 염려해 조명에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도서관의 최대 수용인원은 65명이다. 하지만 독서 환경을 고려하면 40명을 최대치로 본다. 요즘엔 평일 10명, 주말에 15명 안팎이 찾아온다. 소전서림에 다녀온 회사원 이모씨(39)는 “그림, 가구, 의자 등 공간에서 오는 즐거움이 컸다.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소전서림의 다이스 체어. 주사위가 돌 듯 움직인다.
소전서림의 다이스 체어. 주사위가 돌 듯 움직인다.

공연이나 전시에 돈을 지불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반면 유료 도서관은 낯설다. ‘책’이 함의하는 공공성의 가치 때문일 터다. 선례가 없는 건 아니다. 부산 망미동의 예술 전문 ‘F1963 도서관’은 연회비로 10만원(학생은 5만원)을 받는다. 비회원은 1일 5000원을 내면 들어갈 수 있다.

도서관은 아니지만, 서울 역삼동의 서점 ‘최인아 책방’도 일부 공간을 유료로 운영한다. 품위있는 중산층 서재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혼자의 서재’다. 1회(2시간) 이용료가 2만2000원이다. 1시간은 1만4000원, 1일은 5만원을 받는다. 가구 브랜드 ‘일룸’은 서울 연희동에 ‘엄마의 서재’를 열었다. 육아와 가사에 바쁜 엄마들이 책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대형 탁자와 소파, 리클라이너, 개인용 책상 등 일룸의 가구를 배치했다. 회원은 4000원, 비회원은 6000원(3시간 기준)을 내면 입장 가능하다.

해외에는 사례가 더 많다. 2018년 일본 도쿄의 롯폰기에 문을 연 분키쓰 서점이 대표적이다. ‘책과의 만남을 위한 책방’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분키쓰는 평일 1500엔(약 1만7600원·세금 별도), 주말·휴일 1800엔(약 2만1100원·세금 별도)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 서점 브랜드 ‘쓰타야’가 신주쿠에 연 유료 공간 ‘북 아파트먼트’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개인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여성 전용 공간을 설치하고 세면대·화장대·안마기·흔들의자까지 갖춰놓았다.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들러 ‘재정비’한 뒤 데이트에 나선다고 한다. 분키쓰가 ‘공간’을 판다면, 쓰타야 북 아파트먼트는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셈이다.

황보유미 소전서림 관장이 서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유료’ 장벽 때문에 접근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지원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황보유미 소전서림 관장이 서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유료’ 장벽 때문에 접근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지원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소전서림의 황보유미 관장에게 ‘왜 유료인지’ 물었다.

-소전서림은 어떤 공간인가.

“도서관이자 아트살롱을 지향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집 밖의 내 서재’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키우는 공간, 책을 통해 개인이 성장하는 공간,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유료 도서관은 낯선 개념이다.

“처음에 ‘책의 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후 서점, 북카페 등 여러 유형을 고민했다. 건물이 서점 하기엔 작고, 북카페 하기엔 크더라. 그래서 도서관으로 정하고, 입장료를 받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자칫하면 사진 올리려고 한 번 들르는 ‘인스타(그램) 명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일본 분키쓰 서점과 유사하지만, 입장료는 더 비싸다.

“입장료 기준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공연·강연비를 포함하기로 한 터라, 요즘 강연료가 얼마인지 조사해봤다. 대체로 1만~3만원 사이더라.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강연 등의 행사를 열지 않고 있지만, 코로나가 수그러드는 대로 정상화할 예정이다.”

-책이나 도서관이 연상케 하는 공공성의 가치를 흔들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시각도 있다.

“공공 도서관과 달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컸다. 도서관을 후원하는 재단 이사장(김원일 더블유에이피파운데이션 이사장·전 골프존 대표)의 뜻은 확고하지만, 그 이후에도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입장료는 도서관 운영비, 강연자 사례비, 직원 급여 등에 충당한다. 초기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

-유료라는 장벽 때문에 접근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대안은 없나.

“도서관이 문을 열기 전인 오전 10시30분~11시 사이 ‘라이브러리 아트 투어’를 진행한다. 북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도서관을 돌아볼 수 있는 무료 프로그램(현재는 코로나19 사태로 잠정 중단)이다. 입장료 문제로 새로운 경험을 하기 힘든 분들을 위한 별도의 ‘사회적 기여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그밖에 작가들을 위한 지원, 특히 시·소설 등에 비해 더 사정이 열악한 비평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 계획도 준비 중이다.”

-소전서림의 안착 여부는 강연·공연 등 프로그램의 활성화에 달려 있을 것 같다.

“동의한다. ‘소전 아카데미’를 운영하는데, 문학더함·예술더함·철학더함 등으로 세분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입문부터 심화 과정까지 4~10회 정도로 체계적 강좌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 도서관 외부 별관에 세미나·워크숍을 위한 공간도 있다. 회원들이 직접 모임을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공연장·낭독회장으로 활용하는 ‘예담’에서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 같은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소전서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소전서림의 한국문학 분야 큐레이션에 참여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는 긍정적이다. 장 대표는 “소전서림을 공공 도서관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면 곤란하다. 별개 트랙으로 봐야 한다”며 “공공성 강화가 필요한 쪽은 공공성을 강화하고, 책을 매개로 새로운 문화가 필요한 쪽은 또 그 방향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이나 음악회에 갈 때는 공간 소비에 돈을 내는데, 책을 읽을 때 주머니를 여는 일은 왜 이상하게 여기는가. 좀 더 편안하고 큐레이션이 잘된 분위기 속에서 독서하고 싶다, 책을 매개로 대화하고 싶다 같은 욕구를 반영한 공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어 “교보생명이 출연한 대산문화재단 외에는 문학에 투자하는 기업을 거의 보지 못했다”면서 “성공한 기업가들이 지식이나 문학에 투자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장 대표와 달랐다. “책이라는 매체이자 오브제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프레스티지 비즈니스’ 아닐까. 문화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새로운 모델 같아 보이지만 ‘책 비즈니스’로 생각하진 않는다.”

‘2018 책의 해’ 집행위원장을 지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소전서림을 “공간의 경험을 파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일본과 중국, 대만 등에서도 책을 매개로 회원제 공간을 만들어 취향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면서도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출판인 입장에서는 책을 경험하는 기회를 확장하는 일인 만큼 반갑다. 그 공간에서 책을 어떻게 ‘발견’할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다만 책을 느끼고 즐기는 일은 좋은데, 책을 ‘벽지’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테리어 요소처럼 소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정 대표는 “소전서림을 만든 이들의 뜻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좋은 공간과 경험을 제공한다 해도 그것을 넘어서서 책이 책 자체로 살아있게 하는, 책이 독자에게 말을 걸게 하는 ‘그 무엇’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소전서림이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프로그램에 어떻게 독자를 참여시키느냐가 성공 여부를 가르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탁월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였던 고 이윤기는 책을 일컬어 “어른의 학교”라고 했다. 과연 소전서림은 “어른의 학교”를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을까.

- 경향신문 20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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