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16 10:49
古典 캐니 책 한권이 ‘뚝딱’ _ 고전번역원 인터넷 한글DB 서비스… “저술-연구 활용” 호응

“세종 때에는 고차 방정식(方程式負)을 풀고,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알았는데, 요즘 삼사(三司)의 사람들은 곱하고 나누는 법(乘除法)만 조잡하게 익힐 뿐이니 수학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라.” (세조실록 6년 6월 16일)

이장주 성균관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55)는 올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수학교육대회(ICME)를 앞두고 한국 고유의 수학 전통을 외국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인터넷 고전종합DB서비스(db.itkc.or.kr)에서 ‘수학’ ‘산학’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니 수학 관련 문헌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이 교수는 여기서 ‘조선수학 24개 장면’을 뽑아내 8폭 병풍으로 만들어 국제수학교육대회장 입구에 전시했다. 참가한 외국인 교수들은 세종 대왕이 수학을 배웠다는 내용과 산학자 홍정하(1684∼?)가 그린 파스칼의 삼각형과 비슷한 그림 앞에서 “원더풀!”을 외치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동문선, 반계수록, 지봉유설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쓰인 우리 고전은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이지만 한문으로 돼 있어 전문 연구자들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1년 1월 번역원이 고전을 한글로 번역해 고전종합DB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한문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게 고전을 활용해 연구나 창작 활동에 이용하고 있다.

TV 드라마 작가로 활동해온 김시연 씨는 6년간 조선 철종에 대한 자료를 섭렵한 끝에 소설 ‘이몽(異夢·은행나무)’을 펴냈다. 그는 “고문헌을 직접 읽어 보니 철종은 우리가 알고 있던 바보 멍청이거나 무능한 왕이 아니었다”며 “5개월간 계속된 왕의 장례식 장면 등을 생생히 재연하는 데 자료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서예강사인 신춘희 씨(51)는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과 함께 고전종합DB에서 ‘효(孝)’나 ‘학(學)’ 등으로 검색되는 좋은 문장을 찾아내 쓴다. “예전에는 중국 고전에서 따온 문장으로 작품 활동을 했어요. 당연히 우리 정서와 맞지 않고, 식상하기까지 한 문구가 많았죠. 요즘은 율곡 이이의 ‘학교모범’, 이인로의 ‘화귀거래사’ 등 우리 고전 속에서 발견해낸 참신한 문장으로 작품 활동을 합니다. 그 덕분에 올해 수강생들의 작품 20점이 서울메트로미술대전 등 각종 서예대전에서 수상했습니다.”

한국식품연구원의 권대영 박사와 부인 정경란 씨(한국학중앙연구원)는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통설에 의문을 품고 한국 고추의 유래를 알기 위해 고전종합DB를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부부는 일본에서 들여온 ‘왜개자’는 한국 고추가 아니며, 고추의 어원은 우리말 ‘고쵸’로 삼국시대 문헌에도 나온다는 내용을 담은 ‘고추이야기’(효일)를 지난해 출간했다.

수필가 이은영 씨(51)는 생활 속 지혜를 담은 수필을 쓸 때면 늘 고전종합DB를 활용한다. 그는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나온 응급 처치법을 인용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작은 건강법’이란 수필을 쓰고, ‘모기’를 주제로 한 글에 다산 정약용의 시 ‘증문(憎蚊)’을 끌어다 썼다.

이동환 한국고전번역원장은 “최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승정원일기를 토대로 제작됐듯 고전은 캐낼수록 빛나는 우리 지식문화의 화수분”이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2012.10.16
http://news.donga.com/3/all/20121016/501325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