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7-29 14:39
일왕-이완용 사진 함께 넣고… 일제 “조선인이 원한 식민지배” 주장
   http://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10728/108226781/1 [0]

(사진1) 한일병합조약이 발효된 1910년 8월 29일 발행된 엽서. 가운데 윗줄 사진 7장 중 오른쪽부터 신공황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에 이어 맨 왼쪽의 이완용 사진이 눈에 띈다. 신동규 동아대 교수 제공
(사진2) 조선총독부가 1910년 발행한 엽서. 조선과 일본 아이들이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신동규 동아대 교수 제공
(사진3)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실을 알리는 엽서. 신동규 동아대 교수 제공
(사진4) 1920년 10월 일본군이 간도 일대에서 독립군 토벌 작전을 벌인 뒤 생포한 독립군과 찍은 사진을 쓴 엽서. 독립군 중 한 명(왼쪽에서 세 번째)의 다리 부분이 흐려져 있다. 신동규 동아대 교수 제공



일제강점기 사진 그림엽서 보니
한일병합 후 식민지배 합리화 위해 ‘파노라마’ 등 기념엽서 잇단 발행
조선-일본 아이들 ‘강강술래 엽서’ “조선 자발적 일제 환영” 메시지 담아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사진엽서엔 ‘자객’ 칭호 붙여 이토 저격 의미 폄하


한일병합조약이 발효된 1910년 8월 29일. 일본 정부와 출판사 등은 기다렸다는 듯 각종 기념엽서를 발행했다. 그중엔 ‘파노라마 엽서’도 다수 있었다. 여러 장이 세트로 발행돼 나란히 이으면 그림이 완성되는 형태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엽서를 수집해 온 신동규 동아대 일본학과 교수는 파노라마 엽서를 포함해 일제가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발행한 사진·그림엽서 6943장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성과포털을 통해 20일부터 공개하고 있다. 40여 년간 모은 엽서 5만여 장 중 학술적 가치가 높고 희귀한 엽서들을 선별한 뒤 데이터베이스화한 결과물이다.

파노라마 엽서 중에서 2장짜리 엽서는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 엽서엔 일왕과 일본이 날조한 ‘신라정벌설’의 주인공인 신공황후,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실제 한반도를 침략했거나, 정벌한 것으로 날조된 주인공의 초상화나 사진이 오른쪽부터 시대순으로 나열돼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다. 신 교수는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일제는 당시 가공의 역사까지 총동원해 한일병합은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진행된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며 “한일병합은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선동하기 위해 이완용을 등장시켰다”라고 해석했다.

‘조선인이 원한 지배’라는 프로파간다는 조선총독부가 1910년 10월 1일부터 발행한 시정(始政) 기념엽서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과 일본 아이들이 강강술래를 하며 일장기를 들고 평화롭게 놀고 있는 그림을 담은 엽서가 대표적이다. 조선의 아이들까지 자발적으로 나서 일제를 환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파노라마 엽서 하단에는 들판에 닭 두 마리가 있고 어둠이 내려앉은 그림이 배치됐다. 신 교수는 “닭은 조선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제가 병합을 통해 어둡고 미개한 조선을 근대국가로 만들어 놓겠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했다.

공개된 엽서 중에는 중국 하얼빈역 승장강을 배경으로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사진이 담긴 것도 있다. 저격 현장은 ‘+’로 표시했다. 이토 히로부미 사진은 오른쪽 상단에 크게 부각시킨 반면 안 의사 사진은 왼쪽 하단에 조그맣게 배치했다. 사진 아래에는 안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자객’이라고 썼다. 이토 히로부미는 억울하게 희생된 의로운 지도자처럼, 안 의사는 범죄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설정한 것. 신 교수는 “나라를 빼앗긴 특수한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음에도 일제는 이를 평화로운 시기에 자객이 일으킨 살인사건으로 규정해 대내외에 알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위해 사진을 전략적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했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에 참패한 일본군이 같은 해 10월 간도 등지에서 독립군 토벌 작전을 벌여 생포한 독립군과 찍은 사진이 담긴 엽서도 처음 공개됐다. 사진 양측엔 일본군이, 가운데에는 독립군 4명이 서 있다. 독립군 중 한 명의 다리 부분이 하얗게 흐려져 있는 게 눈에 띈다. 신 교수는 “다른 사진들을 분석해 보면 이 독립군은 다리를 심하게 다쳐 걷지 못하는 상태”라며 “부상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면서까지 작전에 성공했음을 선전하기 위해 사진에 손을 댄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이번에 공개한 엽서 일부와 소장한 엽서 가운데 500여 장을 추려 다음 달 13일부터 부산 남구에 있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뼈아픈 역사적 사료인 엽서를 누구나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 신 교수는 지난달 이 역사관에 일제강점기 관련 희귀 사진첩 등 자료 343건을 기증했다. 그는 “일제가 조선인은 물론 일본인들에게까지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얼마나 교묘한 프로파간다를 행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도 소장한 자료를 최대한 많이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hjson@donga.com



-동아일보. 손효주 기자. 20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