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8-03 13:06
“전봉준 판결문서 세월호 침수기록까지…이 손으로 살려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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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조은혜 학예연구사가 지난 7월15일 오후 경기 성남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복원실에서 종이기록물 복원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진2) 지난달 15일 오후 경기 성남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복원실에서 한 주무관이 종이기록물에 한지를 덧대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성남/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진3) 지난 7월 15일 오후 경기 성남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복원실에서 한 주무관이 먹물에 훼손된 종이기록물을 분광작업을 통해 디지털 복원하고 있다. 성남/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진4) 2017년 3년만에 인양된 세월호에서 수습된 업무 수첩의 복원 전 모습.
(사진5) 세월호 수습 업무 수첩의 복원 이후 상태.



[짬] 국가기록원 복원관리과 조은혜 학예연구사


지난달 15일 오후에 찾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3층 복원실. 연구원 10명이 붓과 핀셋, 스펀지 등을 손에 든 채 각자 작업대에서 뭔가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들의 온 관심사를 빼앗고 있던 상대는 다름 아닌 빛바래고 헤지고 찢긴 종이들이었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갈수록 종이의 쓰임은 줄어들고 있다지만 아직 종이기록물이 갖는 힘은 막강해요. 종이기록물 복원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죠.”
조은혜 국가기록원 복원관리과 주무관(학예연구사)이 힘줘 말했다. 각종 국가기록물 680만권이 보관된 나라기록관에는 조 연구사 등 전문인력 10여명이 종이기록물 복원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 첫 근대 판결문인 ‘동학혁명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 판결문부터 일본강점기 각종 도면, 3년 동안 펄 속에 잠겨있던 세월호 기록물 등이 이곳 복원실을 거쳐 새 생명을 얻었다.

성남시 나라기록관 3층 복원실 탐방
연구원 10여명 빛바랜 종이와 씨름중
“우선대상 53만장 중 복원율 아직 18%”

3년간 펄에 묻혔던 세월호 업무수첩 등
1년 걸려 113점 9699장 응급복원 ‘생명’
“일제 근대기록물 되살릴 기술도 시급”


복원작업은 기록물 상태 확인에 이물질 등을 제거하는 클리닝, 훼손 부분을 보완하는 결실부 보강, 평탄화 작업, 보관 순으로 진행된다. 조 연구사는 “기록물 복원의 궁극적 목적은 기록물의 강도를 회복시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라며 “기록물의 손상 원인과 유형, 손상 정도, 그리고 종이의 재질과 필기 매체의 종류 등을 정밀 조사하여 복원처리 방향을 세운다”고 설명했다.
작업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온종일 심혈을 기울여도 에이(A)4 용지 12장 크기인 조선총독부의 건물·철도 도면 한장 정도를 겨우 복원할 뿐이라고 한다.

이날 한 연구원은 40여년 전 도면에 부착된 셀로판테이프를 떼느라 한시간 넘게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따뜻한 바람을 살살 쐐 어린아이 다루듯 테이프를 뗀 뒤, 면봉에 유기용제를 묻혀 접착제를 닦아냈다. 복원·보관에 필요한 도구도 상당 부분 손수 만들어 사용한단다. 종이는 복원 대상 기록물의 재질과 두께 등을 고려해 주문제작된 한지를 이용하는데, 기록물과 비슷한 색깔을 만들기 위해 오리나무 열매·도토리 껍질 등을 달여 직접 염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접착제도 밀가루풀을 쒀서 단백질 제거 작업을 거치느라 완성까지 6개월이 걸린다.
조 연구사는 과학기술 활용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소개했다. 3년 전부터는 위조지폐 감식이나 과학수사에 쓰는 ‘분광 이미지 비교 감식기’를 이용해 숨은 글자나 무늬를 찾아내어 그 이미지를 디지털로 스캔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날도 한 연구원이 먹물이 번진 종이 아래에 숨겨져 있던 글자를 되살려내고 있었다.
조 연구사는 2013년 국가기록원 입사 이전 11년에 지금까지 8년을 더해 20년 가까운 복원 경력을 쌓았다.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뭐였을까.

그는 근현대문화재로는 처음으로 ‘보물’로 등재된 <조선말큰사전> 원고(1929~42), 후손들의 ‘조상땅 찾기’에 필수여서 많이 열람되지만 책장이 달라붙어 복원에 애를 먹었던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부>(1919), 한국전쟁사 연구에 필수인 ‘한국전쟁 기록물’(1950) 등에 이어 ‘세월호 수습 기록물’을 첫손으로 꼽았다.
“2017년 5월 연휴 직전 퇴근을 준비할 무렵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세월호에서 수습된 기록물의 응급복원처리가 가능하겠냐’는 전화를 받았어요.”
2014년 4월 침몰 뒤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에서 꺼낸 종이기록물들은 펄과 기름에 범벅인 상태였다. 염분과 펄·기름 등을 제거하고 한장한장 해체해 1년 동안 113점 9699장을 복원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유인물, 선원들이 썼던 업무수첩과 항해일지, 당직근무서 등이 국과수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로 다시 보내졌다.
조 연구사는 “곰팡이 같은 미생물 부식 때문에 악취가 엄청났다. 기록물 내용보다는 객관적인 자세로 복원작업에만 열중하려고 애썼다. 지금까지 기록물 복원 가운데 가장 가슴 아팠고 힘든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표안나는 더딘 작업인 만큼, 갈 길도 아직 멀다. 이날 복원과정을 지켜본 조선총독부 도면만 해도 1999년부터 22년째 작업중이지만 3만6천장 가운데 아직 9천장이 남아 있다고 한다. 국가기록원이 분류한 우선복원 대상 기록물 53만장 가운데 현재까지 9만6천장만 복원이 완료돼 복원율은 18%에 그친다.

더욱이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기록물은 복원방법 연구도 부족한 상태다. 조 연구사는 “천연섬유로 만든 한지는 보존성이 좋지만, 산업화 이후 목재펄프로 만들어져 화학처리된 종이는 태어날 때부터 ‘산성’을 띄어 보존성이 좋지 못하다”며 “근현대 기록물의 재료와 재료의 특성, 복원처리 방법 연구가 많이 필요한데, 복원처리시설이나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국가중요기록물이 훼손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디지털시대라지만, 젊은 시절 연애편지처럼 종이만이 전할 수 있는 감성은 여전하다. 그런 아련한 추억을 담은 종이를 오래 간직할 수 있는 ‘팁’은 뭘까.
“직사광선을 피해 보관하되, 장마 등 습할 때는 한지 같은 중성지로 제습제와 함께 감싸 중성용 보존상자에 넣어서 보관하는 것이 좋아요. 중성지가 없으면 에이4 용지 등을 활용해도 되고요. 그리고 필기매체 종류에 따라 글자가 점점 휘발되거나 사진의 색상 등이 변색 될 수 있으니, 만약에 대비해 스캐닝을 해두면 더 안전하겠지요.”



-한겨레신문. 박태우 기자. 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