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2-13 14:43
워싱턴대 소장한 국권상실기 한국 귀중본 44권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022793.html [3]

동아시아도서관 한국자료 15만건
20여년 일한 재미 사서가 공개
1900~45년 발행본 연대별 배열
일제 금서, 독립운동가 저서 등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
동아시아도서관의 보물: 1900~1945
이효경 지음 l 유유 l 2만5000원

애서가한테 도서관은 천국일 테다.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은 어떨까. 1937년부터 도서를 구입하기 시작해 80만건이 넘는 한중일 자료를 갖췄다. 한국어 자료는 15만건. 북미에서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 다음으로 많다. 초기 유학생인 남궁요설의 기증본, 한국사학자 제임스 팔레의 장서를 뼈대로 해마다 1억원어치 이상의 책을 늘려왔다. 최근 한국인 노부부가 컨테이너 보관료를 물지 못해 경매에 나왔다는 한국만화 1만5000권을 수장했다.

동아시아도서관의 한국인 사서 이효경씨가 수장고 문을 열어 귀중본 일부를 공개했다.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 2002년부터 그곳에 근무하며 눈여겨 본 책 가운데 1900~1945년 발행된 한국 관련 44권을 소개한다. ‘세계 유일본’ ‘최초 공개’ 등 자랑할 만한 ‘보물’이 있을까? 실망스럽게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유몽천자>(牖蒙千字) 초판본 1~3권 정도?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1901년에 펴낸 한자 학습서로 제2권은 ‘최초 공개’다. ‘고롬보스의 아미리가(亞美利加) 신점득(新占得)’ 등 세계사로써 한자 1천자를 익히도록 했다. 나머지 책은 ‘소소’.

정작 보물은 따로 있다. 천박한 눈으로 ‘물건’을 찾노라 책을 훑고 난 뒤 비로소 드러나는 지은이의 모습이다. 도서관학 교수가 되려고 미국에 갔다가 프린스턴대 동양도서관 ‘알바’를 계기로 사서가 됐다. 이해경(의친왕의 딸) 후임으로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 5년을 거쳐 2002년 워싱턴대로 옮겨 지금껏 20여년 오로지 사서다. 죽 이으면 서울~춘천 거리가 되는 서가를 돌며 책을 찾아주는 일 외에 매달 한국 책 토크프로그램인 ‘북소리’를 진행한다. 2019년엔 그 학교 최고 사서로 선정됐다.

정교하게 가려낸 책 44권은 발행연대 순으로 배열하였다. 책의 만듦새와 내용으로써 국권상실기 시대상을 꿸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입김에 발매금지 당한 초등교과서 <초등소학>(1906), 한중미일 4개 국어로 지석영이 재편집한 정약용의 <아학편>(兒學篇, 1908), 박태원의 청계천 일대 빈민가 르포 <천변풍경>(1938), 여성들의 참혹한 삶을 그린 <여류단편걸작집>(1940) 등.

재미 사서의 정체성이 도드진다. 조선인 노동자를 인솔하여 하와이에 정착한 독립운동가 현순(해외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미군정이 추방하고 평양에서 사형 당한 앨리스 현의 아버지) 목사가 쓴 하와이 안내서 <포와유람기>(布哇遊覽記, 1909), 항일 무장독립운동가 박용만이 쓰고 호놀룰루 국민보사에서 찍은 <아미리가혁명>(亞美里加革命, 1915), 조선인 의사가 돈을 대어 펴낸 박은식의 하와이판 <한국통사>(1917), 흥사단 미주본부가 있는 나성(로스앤젤레스)에서 등사판 손글씨로 출간한 <흥사단>(興士團, 1939)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낯선 인물 하나. (1944)를 쓴 선우학원. 1940년대 워싱턴대에서 한국으로 파병될 미군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교직원 노조 책임자였으며 미 서부 한국계 공산당 조직을 이끌었다. 매카시 선풍에 휩쓸려 1949년 해직됐다. 고향인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한겨레신문.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사진 권남열 작가 촬영·유유 제공. 202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