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2-17 16:54
“한탄스럽기 짝이 없어”… 이육사 친필편지 복원
   http://www.segye.com/newsView/20211216516031 [7]

(사진1) 조선은행 폭파 의거 관련 집행원부.
(사진2) 이육사가 신석초에게 보낸 엽서.



일제강점기 ‘집행원부’ 등 7건
국가기록원, 온라인 통해 공개

저항시 ‘광야’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1904~1944)의 친필 한문 편지가 국가기록원에 의해 복원됐다.

16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이번에 복원된 이육사 관련 기록물은 국가기록원 소장 ‘집행원부’(1929년)와 이육사문학관이 갖고 있는 ‘친필 한문편지와 엽서’(1930∼1936년), ‘육사시집’ 초판본(1946년) 등 7건 341매다. 복원된 기록물은 온라인(www.archives.go.kr)을 통해 일반 공개된다.

복원 기록물 가운데 집행원부는 이번에 원문이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육사가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에 연루돼 체포됐을 당시 처분 결과를 담고 있다. 이육사의 본명인 이원록으로 기록돼 있는 집행원부에는 죄목이 ‘폭발물 취체(통제)규칙’,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치안유지법 위반’, ‘협박과 살인미수’라고 적혀 있다. 조선은행 폭파의거는 독립운동가 장진홍(1895∼1930) 의사가 주도한 것으로 장 의사가 1929년 체포되면서 이육사는 풀려났다. 집행원부 복원으로 이육사 석방일자가 1929년 5월4일이고,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보석·출감 일자 등도 확인됐다.

이육사가 ‘이활’이라는 이름으로 1930년 친척 이상하에게 보낸 한문편지는 출소 후 곤궁했던 이육사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육사는 편지에서 “형제가 서로 의지하며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보잘것없어서 아침에는 끼닛거리가 없고 저녁이면 잠잘 곳이 마땅하지 않으니 한탄스럽기 짝이 없을 뿐입니다”(한글 번역)라고 적었다. 이육사의 유일한 친필 편지는 이육사문학관이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육사가 친척 이원봉에게 보낸 엽서(1931년 11월10일), 문우였던 신석초에게 보낸 엽서도 있다. 신석초에 보낸 엽서에는 “명사 오십리에 동해의 잔물결이 두 사람의 걸어간 자취조차 씻어버리지 못하고 보드랍게 할터(‘핥아’의 사투리 추정) 갑니다”라는 문학적 표현이 눈에 띈다.

손병희 이육사문학관 관장은 “미공개 일제시대 집행원부와 이육사의 한문편지 내용을 확인한 것은 소중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wisdom@segye.com



-세계일보. 정지혜 기자. 202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