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0-06 14:26
古書의 명복을 빕니다… 전국 대학 ‘책 장례식’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10/04/XIHMKCWSRF… [15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김성규)

디지털 시대, 울산대도 45만권 버리기로… 작년 206만권 폐기

울산대가 장서 94만여 권 중 절반에 가까운 45만권 폐기를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울산대는 올 하반기부터 35억원을 들여 중앙도서관 본관 1~5층 서가를 없애고 디지털 열람실, 전시관, 노트북존 등을 만들 계획이라고 3일 밝혔다. 이 대학 책은 작년 말 기준 94만4499권으로 도서관 본관과 신관에 반반씩 나뉘어 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울산대는 지난 7월 교수들에게 ‘폐기 대상 도서 목록’을 전달하고, 보존 희망 도서를 파악했다. 교수들은 최근 45만권 중 26만권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으나 대학 측은 더 줄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폐기 대상은 단행본 33만5000권과 참고 도서 2만2000권, 저널·논문집 9만4000권 등 약 45만권으로, 동양서(書)는 14년간, 서양서는 19년간 대출 기록이 없는 책 등을 기준으로 했다.

이 대학교수들은 “없애면 안 되는 책들도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1852년 런던에서 출판된 찰스 매케이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 초기 판본, 1886년 출판된 존 러스킨의 ‘자연·예술·도덕·종교의 진실과 아름다움’ 초기 판본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 가치가 있는 1900년대 초 해외 잡지와 일제강점기 경성과 도쿄에서 나온 잡지의 영인본(影印本·사진 등으로 복제한 책)도 포함됐다.

울산대 측은 “소장 가치를 판단해 폐기 목록을 정했다”며 “학생들이 전자책을 많이 보고, 선호 공간도 과거와 달라져 미래 교육에 투자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학 총학생회는 장서 폐기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 대학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대학도서관의 ‘책 장례식’은 울산대만의 일은 아니다. 전국 대학도서관이 폐기한 책은 2020년 110만권에서 2021년 165만권, 2022년 206만권 등으로 매년 느는 추세다. 현행 도서관법은 연간 장서의 7% 이내로 폐기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장서의 7% 이상을 버린 대학은 7곳, 최근 5년간 서가 공간을 전시관·카페 등으로 바꾼 대학은 28곳이었다. 책을 치우고 캡슐 침대를 놓은 곳도 있다.

종이 책보다 전자책이나 전자저널, 오디오북 등 전자 자료 이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대학생 1명이 대학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은 2.5권, 4년(2018년 5.2권) 만에 절반 넘게 줄었다. 반면 전자 자료 이용은 같은 기간 314건에서 407건으로 약 30% 늘었다. 대학들의 전자 자료 구입비는 전체 자료 구입비의 70%를 넘는 수준이다.

도서관 전문가들은 “대학도서관은 연구자들의 기반이어서 책 폐기만큼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덕현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장서 수는 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라며 “대학도서관진흥법의 책 보유 규정(4년제 대학생 1명당 70권)대로면 울산대는 75만권은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연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대학도서관은 대중 도서가 많은 일반 도서관과는 구별돼야 한다”면서 “디지털화가 잘돼 있는 선진국도 장서는 엄격한 기준으로 신중하게 폐기한다”고 했다.

해외 대학들은 수십 년 전부터 여러 대학이 함께 ‘공동 보존 서고’를 운영 중이다. 미국에선 1942년 하버드대와 보스턴 공공 도서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공동 보존 서고를 구축했다. 1996년 프랑스 파리에서도 27개 대학이 4층 건물의 공동 보존 서고를 지었다. 서가 길이만 72㎞에 300만권 소장이 가능하다. 운영비는 프랑스 정부가 대고, 운영은 프랑스 교육부 내 위원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논의는 있었지만 아직까지 한 곳도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도서관 발전 종합 계획에 공동 보존 서고 건립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후대를 위해 책 보존에 나서 달라는 취지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필요한 것은 맞지만 부지 확보나 운영비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며 “지역의 거점 대학을 만드는 ‘글로컬 대학’ 사업과 연계해 공동 보존 서고를 설치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했다.

- 조선일보 2023.10.04 김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