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문화상 '올해의 사서' 박영애
박영애 경기도서관 도서관운영팀장은 지난 20여 년간 41개 도시 도서관 105곳에 다녀왔다. 한 도서관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해서 횟수로는 150회가 넘는다. 일본, 싱가포르 등 가까운 아시아 국가부터 시작해서 유럽과 북미까지 돌았다. 이 중 출장 네 번 빼고는 다 자비를 들였다. “사서로서의 사명감이나 직업 의식 때문이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너무 재밌었다. 한 번 다녀온 곳이라도 나중에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서 또 가기도 했다. 호기심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아는 자, 잘하는 자도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공자)는 말처럼, 도서관에 관해서는 박 팀장을 당해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신구도서관재단이 15일 제3회 신구문화상 ‘올해의 사서’에 박 팀장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10년 이상 경력의 사서 가운데 도서관 운영과 독서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을 뽑는 상이다.
박 팀장은 의정부시 도서관과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지난해 명예퇴직을 했다. 시청 공무원인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의정부미술도서관이 문을 연 2019년부터다. 이 도서관 한가운데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원형 계단이 있고, 전면 유리창을 통해 외부의 풍경과 빛을 도서관 안으로 들였다. 신진 미술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볼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와 미술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도 도서관의 일부다. ‘미술관 같은 도서관’으로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얻었고, 예능과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섭외됐다.
지난 3일 만난 박 팀장은 “일본이나 유럽의 도서관에 가보니 책 빌리는 곳, 공부하는 곳이 따로 구분 없이 열린 곳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며 “독서실 같은 도서관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왜 미술도서관이었을까. 그는 “애를 키우면서 예체능 사교육비가 비싸다고 느꼈다”며 “공공성을 고려했을 때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특화 도서관이 시민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의정부미술도서관에 이어 의정부음악도서관이 생겼고, 내년에는 의정부디자인도서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모두 박 팀장이 기획을 주도했다. 의정부음악도서관에는 벽에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고, 미군 기지가 있었던 지역 특색을 살려 흑인음악 자료실도 갖췄다. 이런 파격적인 기획을 통과시킨 비결을 물었다. 박 팀장은 “학부 때 도서관학(2년제)을 전공했는데, 일이 재밌어서 문헌정보학 박사까지 받았고, 쉰이 넘어서 건축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며 “‘공부하는 공무원’이라고 알려진 데다가 몇 년에 걸쳐 내 구상을 알리고 다녔더니 결국 사람들이 내 얘기를 잘 들어준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은퇴 직후 경기도청에 사서로 채용돼 오는 25일 개관을 앞둔 경기도서관 건립에 참여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즐거움을 찾고, 인공지능(AI)에서 지식을 얻는 시대에 도서관이 계속 필요할까. 박 사서는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 이상으로 많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지방 인구 소멸이 한국보다 빨리 진행된 일본에선 도서관이 지역의 행정이나 문화 생활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서 한국의 도서관도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했다.
신구문화상 ‘올해의 책’ 부문엔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가 뽑혔고, 올해 신설된 ‘리더앤리더(Reader&Leader) 어워드’는 e스포츠 선수 페이커(본명 이상혁)에게 돌아갔다. 시상식은 오는 23일에 열린다.
조선일보 2025.10.15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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