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2-20 15:00
“허접한 장난감·잡지·전단지… 그 속에서 ‘스토리’를 줍죠”
100㎏에 육박하는 몸무게 앞에 100g도 채 나가지 않는 피규어(Figure·인간-동물 형상의 모형 장난감)가 딱 버티고 서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그 앞에 수놓인 피규어가 수백 개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있거나 만화 속 어느 캐릭터들의 장난스러운 장면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장난감 세상에 파묻혀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 현태준(47) 작가의 ‘오늘’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렇게 막을 내린다.

그는 흔히 ‘장난감 연구가’로 불린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그의 공간 ‘뽈랄라 수집관’에는 온갖 종류의 장난감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종목별, 분야별로 따라가 보니, 없는 게 없다.

금세라도 버리고 싶은 욕구가 넘치지만 옛 기억을 살아 숨 쉬게 하는 100원짜리 싸구려 장난감 코너에선 “어떻게 이런 귀한 보물들을 찾아냈을까”하는 의구심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곳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최신 애니메이션 피규어 코너는 “얼마일까”를 먼저 떠올릴 만큼 구매욕을 자극한다. 눈을 조금 크게 뜨면 우표나 레코드판, 문방구류 등 옛 잡동사니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시면 알겠지만, 옛날 물건부터 최신 것까지 모두 다 있어요. 이젠 남의 물건도 여기서 팔아주는 대행업도 병행하죠. 2008년에 이 장소를 구해 그간 모은 물건들을 진열했어요. 정리하는 데만 무려 1년이 걸리더라고요. 제가 해보니까, 물건을 수집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데, 정리하고 분류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구석 한 자리에 따로(?) 마련된 칸막이에는 성인 만화와 도박 등 퇴폐 문화의 온상들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1도 인쇄의 싸구려 글씨로 새겨넣은 룸살롱 전단지하며, 도박 홍보 전단지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뭔가를 주울 때, 보통 저와 엮인 것들 중심으로 수집하는 스타일이에요. 도박 전단지가 있다는 건 제가 도박에 관심이 있었다는 뜻이겠죠? 제가 도박을 좋아해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인 오락실 ‘바다이야기’에도 몇 번 갔었거든요. 그때 성인 전단지들이 엄청 길바닥에 뿌려졌어요. 그걸 보니, ‘이런 전단지는 앞으로 구하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팍 왔죠. 당시 그곳에는 일용직하시는 분들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이 갔는데, 그분들에게 이곳이 나름 중요한 생활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고, 전단지가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모아둔 거예요.”

그가 모아둔 장난감은 얼마나 될까. 그는 “보통 장난감 수집가들이 하는 얘길 들어보면 30만 점에서 60만 점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만큼은 있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사서 창고에 쌓아두기 때문에 정확한 물량은 측정할 수 없지만, 어느 누구 못지않은 양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가 소유한 물건들은 ‘장난감’으로 일원화하기엔 너무 종류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B급 자료’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별로 쓸데 없고, 값어치 떨어지고 쉽게 버리고 사라지는 그런 것들을 주로 줍거나 샀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히 널려있는 것들이죠. 제가 공짜 좋아하고, 내기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어릴 때부터 늘 줍는 걸 좋아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많이 주워왔고요. 어느 상갓집에서 버린 유품도 주워왔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취향 속에서 모으다 보니, 장난감이 제일 많았죠.”

그가 싸구려 장난감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건 98년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부터. 당시 아내와 함께 촌티 나는 소품을 파는 ‘신식공작실과 얼레꼴레’라는 가게를 운영했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자 모든 걸 접고 캐나다로 무작정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장난감 가게들은 그에게 작은 충격을 안겨줬다. 오래된 장난감들이 대부분 보존돼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뒤 “우리도 옛날 장난감이 많았는데…”하는 생각이 스쳤다.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우리의 옛날 장난감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돈암동 같이 오래된 동네 문방구에 특히 흥미로운 게 많았죠. 전국 문방구를 돌면서 수집한 건 일본이나 미국 장난감을 흉내 낸 보잘것없는 ‘짝퉁’들이었어요. 처량한 표정의 아톰이나 변두리 옷차림의 원더우먼, 두메산골 총각 스타일의 독수리 오형제 같이 된장 냄새 가득한 인형들이 주인공이었어요.”

그가 이 ‘허접한’ 인형들에 유독 애정이 많았던 것은 이 장난감들이 지닌 정서 때문이었다. 가난했던 70, 80년대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 인형들은 그 자체가 우리의 문화였다.

“장난감은 일본의 양철 장난감이 고가예요. 300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 장난감은 사두면 가격도 계속 오르거든요. 우리 장난감은 모두 이런 제품을 대부분 카피했기 때문에 수집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다만 우리 장난감은 저와 제 친구, 그 밑의 세대들이 갖고 놀았고 그때마다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탱크를 사다 아버지한테 걸려 얻어맞은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들어있지 않나요? ‘빈티’ 나는 우리 장난감을 만드는 분들은 보통 인형을 만들 때 자신의 얼굴과 비슷하게 그려내는 경우가 많아요. 바로 우리 시대의 찌들고 가난하고 투박한 모습이 장난감에 모두 투영된 셈이죠. 그래서 어딘가 입도 축 처지고, 눈동자도 불안해 보이는 그런 인형들에 연민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그 시대를 잊지 않고 돌아볼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끌렸고요.”

99㎡ 정도의 ‘뽈랄라 수집관’에 전시된 ‘작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의 알짜배기 작품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작업실에 어지럽게 널려져있다. 그는 “여기에는 ‘뽈랄라 수집관’보다 3배에 이르는 수집품들이 보관돼 있다”며 “정말 구하기 힘든 70년대 완구들이 보관된 또 다른 비밀 창구가 있긴 한데, 그건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주로 수집하는 품목은 장난감과 책이다.

장난감은 15년, 책은 30년 가까이 모았다. 책들은 주로 잡지나 아동 관련 만화책, 대중소설, 허접한 깔깔 유머 1번지, 버스 터미널에서 팔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관상책이나 선데이서울, 여자의 성과 관련된 음탕한 잡지들도 그가 자랑하는 서적 중 하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장난감을 더 많이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옛날 장난감은 요즘 장난감에서 느낄 수 없는 특이한 색감과 질감, 모양이 있어요. 그 정서가 되게 독특하거든요. 그런 것에 재미를 쌓다 보니까, 모아둔 장난감으로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99년에 ‘뽈랄라 대행진’이라는 책을 통해 장난감 얘기를 넣었어요. 책 작업하면서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 장난감을 정리하고 보관하고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죠.”

그는 어릴 때 내성적이고 모범적이었다. 덩치는 컸지만 겁이 많아 선생님이 시키는 일을 마다치 않고 묵묵히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속엔 늘 반항의 기질이 꿈틀거렸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도 어린 시절 느꼈던 권위나 엄숙에 대한 깊은 반항심이 잉태한 표출 심리인 셈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점점 품위 있어지려고 하는 모습들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반대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제 인생의 모토가 솔직하고 편하게 살자거든요. 그래서인지 장난감도 되도록 가벼운 소재의 원색적이고 알록달록하고 경쾌한 느낌을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뽈랄라’의 의미도 그런 그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다. 포(뽀)르노와 랄랄라의 합성어인 이 단어가 주는 이중성, 부끄럽지만 설레는 기분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드러내자는 게 그의 의도다. 그는 “내 성격과 맞물려 있는 단어”라며 “‘음침’은 아니고 ‘음지’적인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솔직 담백하고 노골적인 아저씨 성향은 오는 8월쯤 발매되는 그의 1인 잡지 ‘오빠 생활’에서도 그대로 투영될 계획. ‘아저씨들의 저질 문화 잡지’를 표방하고 나선 이 책에서 그는 입으로만 머물던 수컷들의 화젯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작정이다. 홍대 한복판에서 또다른 ‘싸이’를 만났다.

- 문화일보 2013.02.2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2200103343003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