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3-20 16:02
“일생의 실수 ‘곤충 홀릭’… 그래도 멸종표본 구할땐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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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마니아 김태완(55) 씨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국내 아마추어 곤충 연구가 가운데 최고봉!’부터 시작해 ‘국내 최다 곤충 표본 수집가’ ‘국내 최대 곤충숍 대표’ ‘국내 곤충 정책분야 민간 자문가’까지 다양한 별칭을 갖고 있다. 이들 수식어에서 그가 40년 이상 곤충에 쏟아넣은 사랑과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김 씨를 만나 곤충과 얽히고설키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8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 뒷골목에 자리잡은 곤충숍인 ‘만천곤충박물관’ 건물. 2층에는 나비, 딱정벌레, 장수하늘소 등 수백 개의 형형색색 곤충 표본 박스가 벽과 중앙 홀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직원 3명은 고객들의 전화를 받거나 곤충 표본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벽의 표본상자들 사이에는 ‘로드 킬’로 죽은 청호반새를 향해서 딱정벌레와 송장벌레가 무리를 이뤄 다가가는 모습을 표본으로 만든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선생님처럼 보이는 여자 손님 몇 명과 곤충표본에 대해 상담하고 있던 김 씨가 “표본상자가 많아 마땅히 앉을 만한 곳도 없다”며 반갑게 맞아줬다.

그의 안내에 따라 1층으로 내려가자 창고가 나타났다. 매달 임차료만 200만 원이나 나가는 100㎡ 규모의 창고 안에는 수천 개의 상자가 천장 밑까지 가득 쌓여 있었으며 안에는 3000종류의 곤충 표본이 채워져 있었다. 이 중 만천곤충박물관 홈페이지에 올린 곤충 수만 2000여 개다. 또 가장 많이 보유한 청띠제비나비 표본의 경우 표본 수만 8만여 개에 이른다.

김 씨는 “국내에는 해외 곤충 딜러(수입상)가 거의 없다”며 “국내 곤충 채집이 어려운 겨울을 이용해서 외국 곤충 표본을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곤충 딜러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마니아, 곤충전문가, 곤충박물관에 좀 더 다양하고 품질 좋은 표본을 공급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재고가 수입가 기준으로 10억 원을 넘었다”며 “일생 최대 실수를 저질렀지만 지금 와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 씨가 이 같은 국내 최대 곤충숍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곤충마니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지난 40여 년간 자신의 손으로 국내외에서 직접 잡아 표본을 만든 곤충만 하늘소, 딱정벌레 등 1000여 종, 1만5000여 마리나 된다. 여기에는 중국인 친지를 통해 어렵게 구한 천연기념물인 북한산 장수하늘소, 말레이시아 특산 대벌레 60여 종 등 희귀한 표본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곤충도감 제작을 위해 지금까지 모아놓은 곤충표본 사진만 2750종에 달한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한 달에 두 번씩 곤충연구 모임에 참석하고 연간 2∼3차례는 반드시 해외로 장기 곤충 채집에 나선다.

김 씨는 수집이나 채집과 마찬가지로 표본 만들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채집한 곤충의 핀 작업 시 때로는 한 마리에 한 시간을 투자할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 이는 핀을 100∼200개 정도 꼽아야 디테일한 모습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본을 일주일 넘게 건조시킨다.

김 씨가 이처럼 곤충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많은 표본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며 그의 숍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곤충박물관 겸 상담소로 변모한 지 오래다.

제일 많이 찾아오는 사람들은 곤충마니아다. 그는 특히 곤충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찾아오면 생업인 곤충판매와 인쇄소 업무를 제쳐두고 곤충에 관해 자문도 해주고 채집 노하우도 가르쳐준다. 그는 디자인, 의상, 공예, 사진, 공학 분야에 대한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수없이 찾아오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도 즐겨 만나고 있다. 나비를 비롯한 곤충이 어떻게 태풍 속을 뚫고 날아가는지, 또 어떻게 극한을 극복하고 살아남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준다. 수입 곡식에 나비와 곤충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종류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알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마니아와 타 분야 전문가들뿐 아니라 학계 전문가들과 공무원들도 그를 자주 찾아온다. 수많은 곤충연구소와 곤충박물관의 요청을 받아 연구와 전시 품목을 설정해주고 표본을 조달해 주기도 했다. 정부도 그에게 곤충 분포, 온난화에 따른 곤충 이동 등에 대한 조사용역을 자주 의뢰한다. 특정 곤충 분야만 연구하는 학자나 전문가들과는 달리 곤충에 대해 폭넓은 지식과 산 경험을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예컨대 지난해 몇몇 마니아와 함께 환경부의 조사 용역을 맡아 창언조롱박딱정벌레를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의 조사 의뢰를 받아 보호종인 수염풍뎅이, 닻무늬길앞잡이, 큰자색호랑꽃무지 등을 조사하기도 했다.

그는 “곤충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원하는 곤충 표본을 구해줄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며 “특히 러시아 쪽과 연계해 국내에서 멸종한 곤충 표본을 가져다 공급할 때는 일종의 자부심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연구소, 교수, 지자체, 마니아 등을 서로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김 씨가 이 같은 연결고리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는 이유는 국내 곤충 연구와 수집 수준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그는 개인적으로 국내 곤충연구소가 수적으로 100개를 넘어서고 생물학과를 졸업한 국내 분류학자들과 아마추어 곤충마니아들이 10여 년 전부터 정부와 함께 서로 힘을 합쳐 곤충 분야에 대한 연구와 보호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실을 매우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종전 식물검역소에서 담당하던 곤충에 대한 검역을 동식물검역소로 이전한 것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정부의 곤충에 대한 인식이 해충으로서의 규제 대상에서 애완이나 연구대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그러나 국내 연구가 곤충 분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아직도 나비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곤충도감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더 이상 일본도감에 의존하지 말고 하루빨리 국내 연구진의 손으로 국내 곤충에 대한 도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또 일본처럼 곤충시장이 커지지 못한 데다 곤충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발을 구르고 있다. 정부가 파충류에 대한 수입자유화를 통해 곤충을 수입한 후 전략적으로 번식시켜 수출상품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곤충을 축산물처럼 취급하는 탓인지 국내에서 현재 키울 수 있는 곤충 종류는 10여 종밖에 안 됩니다. 곤충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외국 곤충을 널리 수입, 애완곤충 시장을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곤충에 대한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하고 곤충의 색, 디자인, 형태에서 얻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산업적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믿는 김 씨. 그는 자신의 꿈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곤충 표본 종류와 양 보유, 소장품을 전시할 개인 박물관 건립, 세계 곤충도감 제작”이라며 활짝 웃었다.

- 문화일보 2013.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