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3-26 13:43
옛 문헌 2000여점 모아 ‘한국의 고서’전 연 고서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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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승구 대표 “학자나 애서가들의 전유물 되는 게 안타까워 기획”

옛 문헌을 통해 우리 역사를 살필 수 있는 ‘한국의 고서’전이 서울 관훈동 화봉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단군 5000년의 역사를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열리는 전시는 3월부터 8월까지 고서·고문서 2000여점이 선보이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삼국유사> <동국사략> 등의 역사서를 비롯해 고활자본, 고문서, 옛 교과서, 문학작품 등이 매달 주제를 바꿔가며 전시된다. 이 가운데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들에게 내린 ‘좌명공신녹권’과 정조대왕이 경서의 핵심을 골라 편찬한 <어정제권>은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이다.

“역사는 사료에서 시작됩니다. 과거의 사실을 전하는 사료가 없으면 역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료 중에서도 역사서는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화봉문고 여승구 대표(78·사진)는 “고서가 학자나 애서가들의 전유물이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고서가 그림이나 도자기 못지않게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소장 도서만으로 전시를 꾸민 여 대표는 ‘국내 최고의 고서 수집가’로 불린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고서에 눈을 돌린 것은 아니다. 1963년 외국의 학술잡지나 백과사전 등을 수입 판매하는 ‘팬아메리칸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한 여 대표는 1980년대 ‘한국출판판매주식회사’라는 꽤 유명한 수입책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가 고서 수집에 뛰어든 건 1982년. 국제 도서박람회인 ‘서울 북페어’에서 한 소장자로부터 <님의 침묵> 등과 같은 시집과 초판본 소설 200여권을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북페어가 끝나면 경매에 부치려고 했어요. 애당초 고서수집 같은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죠. 한데 한 지인이 ‘이 기회에 고서 박물관 하나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고 한 말에 확 꽂힌 거예요.”

그때부터 그는 고서수집가의 길로 들어섰다. 틈나는 대로 전국의 고서점과 청계천 헌책방을 뒤졌다. 고서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국내는 물론 외국의 서점가도 빠뜨리지 않았다. 1983년 일본 오사카를 여행하던 중에는 한 지하상가 고서점에서 한국판 <천로역정>을 손에 넣었다. 이렇게 모은 고서와 고문서, 서화는 모두 10만여점이나 됐다. 여 대표는 이것으로 2004년 10월 ‘화봉책박물관’을 세웠다.

여 대표는 고서를 수집하느라 서울 한복판의 빌딩 두 채를 팔아치워야 했다. 그가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책박물관을 세운 데는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100년이 앞서는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문화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우리의 옛 금속활자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브랜드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희망을 드러냈다.

“한국문화 중에서는 출판인쇄문화가 으뜸입니다. 구텐베르크보다 훨씬 앞선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세계에서 당당히 인정받게 되면 한국의 이미지와 한국의 상품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 대표는 “대기업들은 도자기, 그림 등의 박물관만 만들 줄 알지 책에는 관심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고서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문헌 학자들이 부족해 옛 책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의 마지막 꿈은 국립 책박물관 건립이다.

“정부가 국공립 기관의 고서를 한데 모아 책박물관을 설립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한국의 책과 인쇄문화를 제대로 홍보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국립 책박물관이 건립된다면 제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자료를 기증할 생각입니다.”

- 경향신문 201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