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3-23 13:52
[물성예찬]<2> 수제 오디오 마니아 김경해 - 오경택 씨
   http://news.donga.com/3/all/20120309/44631580/1 [562]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Sound… 설계하고 튜닝하는 손맛

《 공연장의 생생한 소리를 자기 방 안에 재현하는 것. 오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궁극의 로망’이다.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스피커와 앰프, 턴테이블, 심지어 연결 케이블까지 바꿔가며 이상의 음향을 찾아간다. 그래서 이들은 ‘오디오를 듣는다’는 말 대신 ‘오디오를 한다’고 말한다. 수천만 원의 돈을 들인다면 빠른 길이겠지만 직접 만든 ‘자작(自作) 오디오’를 통해 자신만의 손맛이 깃든 소리를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 》

○ 오디오 생활 30년

턴테이블 장인 김경해 씨
“LP의 음향은 턴테이블을 구성하는 아크릴, 알루미늄, 실, 나무 등 다양한 재료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죠. 소재를 바꾸었을 때마다 달라지는 소리의 질감은 오디오 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경기 시화공단에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김경해 씨(58)의 집 안에는 투명한 아크릴과 알루미늄으로 직접 깎아 만든 턴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높이 24cm, 무게 30kg에 이르는 투박한 모양새와 달리 LP판을 올려놓자 따뜻하고 명료한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그는 “턴테이블 음질의 생명은 진동을 없애고, 정확한 회전수를 얻는 것”이라며 “비싼 턴테이블도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직접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2004년 봄부터 6개월간 회사에 있는 선반 기계로 아크릴과 알루미늄 판을 깎고, 초정밀 베어링과 세라믹 볼을 만들어내고, 독일제 일본제 등 다양한 모터를 연결해보며 밤을 지새웠다. 특히 모터와 플래터를 연결하는 실을 찾기 위해 낚싯줄, 명주실, 치실, 카세트테이프줄까지 이용해보는 실험을 거듭했다. 그의 집에 있는 턴테이블은 3호기. 1호기 모델은 경기 고양 아람누리극장 내 클라라하우스에 비치돼 있다. 그는 “오디오 생활 30년 동안 수없이 스피커와 앰프를 바꾸느라 집사람하고도 많이 싸웠지요. 그런데 2004년 턴테이블을 직접 만들어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은 후에는 오디오 생활은 물론이고 가정에도 평화가 왔어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 전남 벌교의 스피커 공방

수제 스피커 장인 오경택 씨

봄비가 촉촉이 내린 5일 오후. 섬진강변의 매화나무 가지마다 영롱한 물방울이 맺혔다. 전남 벌교의 명물인 꼬막정식 식당이 즐비한 길가의 한 귀퉁이에 있는 허름한 컨테이너 작업장에 들어서자 홀로 나무를 깎고 있던 오경택 씨(39)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그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수제(手製) 스피커 장인이다.

목공도구가 어지러이 널려 있는 작업장을 건너 리스닝룸에 들어서자 그가 요즘 만들고 있는 높이 2m, 무게 350kg짜리 스피커가 보였다. 미세한 가로무늬가 아름다운 이 자작나무통 스피커는 그가 두께 12mm짜리 자작나무판을 매일 한 장 한 장 1년 6개월 동안 겹쳐 붙여서 만든 것이다. 설계부터 음향튜닝까지 합치면 3년이 걸렸다.

“매일 오전 8시에 나와 다음 날 오전 2, 3시까지 작업합니다. 10년 만에 만난 선배 형님이 ‘너 혼자 도 많이 닦고 있구나’라고 하시더군요.”

토목설계회사에 다녔던 그는 1999년 결혼 후 처음으로 홈시어터용 스피커를 제작했다. 당시 장흥댐 건설 현장소장을 맡고 있었는데 퇴근 후 취미삼아 만들어본 스피커가 동호회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자 용기를 얻었다. 이후 2002년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공방을 차렸다. 아버지가 벌교에서 꼬막과 바지락을 선별하던 작업장은 이제 스피커 공방으로 재탄생했다. 그의 ‘벌교 아도르 사운드’ 공방은 국내 오디오 마니아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순례지로 떠올랐다. 그는 “사람마다 원하는 모양과 소리가 다른데,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스피커를 만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20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