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31 15:38
노트북 신기함에 푹∼ 20년간 170여대 모아 “1대도 빠짐없이 작동중” ‘노트북 수집가’ 안현철씨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73101033424183003 [254]

지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컴퓨터 좀 만진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리뷰안’이란 아이디(ID)는 지존으로 통했다.

당시 리뷰안은 컴퓨터 관련 커뮤니티에 노트북 개조나 수리 방법에 대한 글을 올리며 필명을 드날렸다. 각종 리뷰 공모전에서도 수차례 수상했다. 리뷰안은 1994년 처음 써본 현대전자 노트북에 매료된 이후 노트북 외길 인생을 걷게 됐다.

리뷰안 안현철(37) 씨는 지금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제조 회사 리뷰안테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안 대표를 서울 용산구 ‘노트북아지트’에서 만났다. 노트북아지트는 안 대표가 그 동안 수집한 170여 개의 노트북을 사람들이 직접 써볼 수 있도록 한 체험 공간이다. 인터뷰에 익숙지 않은 듯 그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처음 하이텔에 리뷰를 쓸 때는 사진이 올라가지 않아서 노트북 개조를 글로만 설명해야 했어요. 사진 몇 장 올리면 될 것 가지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제 설명대로 따라해서 노트북이 빨라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정말 좋아졌지요.”

SSD는 하드디스크(HDD)를 대체하는 고속 보조기억장치다. 구형 노트북을 SSD로 업그레이드하면 5배 이상 속도 개선 효과를 나타낸다. 노트북을 빠르게 만들고자 수차례 개조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썼던 안 대표의 열정은, 결국 그를 SSD 업체의 젊은 최고경영자(CEO)로 이끌었다.

노트북 얘기를 시작하자 굳었던 그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그는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가보를 다루듯이 노트북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관리한다. 1992년에 나온 건전지로 작동하는 원시(?) 노트북(HP200LX)을 포함한 전시된 모든 노트북은 지금도 전원 버튼만 누르면 윙윙거리며 부팅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노트북아지트를 박물관이나 전시실이 아니라 체험관이라 강조한다.

“그냥 좋아서 그런 거지, 딱히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노트북을 모으기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다만 여러 가지 좋은 노트북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게 아쉬웠어요. 지금은 노트북들이 하나같이 똑같지만 초창기만 해도 각양각색의 다양한 노트북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노트북아지트를 만든 건 이런 재미있는 제품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취지 때문이었어요.”

노트북아지트에는 그의 말처럼 각양각색의 노트북들이 많았다. 지금은 휴대전화 브랜드로만 알려진 삼성전자의 ‘애니콜’ 노트북(2007년 출시·SPH-P9200)부터 영화 미션임파서블 1편에 나왔던 IBM의 버터플라이 노트북(1994년 출시·싱크패드701CS)까지 말 그대로 없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이 희귀한 노트북들을 그는 어떻게 구했을까.

안 대표는 “지난해 입수한 싱크패드701CS는 3년 동안 공들여서 얻은 물건”이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싱크패드701CS는 출시 당시에 약 4000달러 정도하는 물건이어서 엄두를 못 내고 애만 태우고 있었지요. 그런데 미국에 있는 소장가가 그 제품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3년 동안 그 주인한테 1주일에 한두 번꼴로 메일을 보내서 졸랐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안 된다고 하지요.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 수집가들이거든요. 집에 그냥 보관하는 게 아니라 좋은 제품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 결국 그 미국인이 공감한 거 같아요.”

안 대표가 최근에 꽂힌 제품은 대우전자 솔로7420T 486 노트북으로 지금도 짝사랑하고 있다. 1년 전 국내 수집가가 해당 제품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주인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안 대표는 “꾸준히 연락 중이지만 설득이 쉽지 않다”면서 “지금 주인이 첫 직장에서 처음 사용하던 노트북이라 양도가 어렵다고 한다”고 말했다.

“추억이 있는 물건을 누군가에게 넘기고 싶지 않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요. 그래서 일단 포기 상태입니다. 근데 또 모르지요. 언젠가 술마시고 전화해서 제발 넘기시라고 사정할지 몰라요.(웃음)”

그가 지금까지 구매에만 사용한 비용은 1억 원 남짓. 노트북에 미친 이 남자의 꿈은 무엇일까.

“노트북을 더 모아서 노트북 박물관을 꾸미고 싶어요. 그런데 그냥 박물관은 아닙니다. 진열된 노트북을 관람객들이 전부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어야 해요. 말하자면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이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가 사진 촬영을 위해 이리저리 옮겼던 노트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행여나 지문이라도 묻었을까 꼼꼼하게 손수건으로 노트북을 닦고 본래 위치로 조심조심 옮긴다. 그러고 보니 20년도 넘은 낡은 노트북들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무게를 가늠한다고 한 손으로 빙빙 돌렸던 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마니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노트북과 사랑에 빠져 결혼도 잊었다는 그의 꿈이 꼭 실현되길 바란다.

- 문화일보 201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