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2-18 14:55
“‘풍로’ 호기심서 시작 3000여점… ‘귀신 붙어온다’ 핀잔도” 민속품 수집가 도광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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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품은 혼이 깃든 조상과의 만남으로 무언의 소통이자 뿌리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 주는 통풍구입니다.”

역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한 중학교 교사가 지난 10년 동안 3000여 점의 민속품을 수집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충북 증평군 형석중학교 체육교사인 도광식(54) 씨. 그가 수집한 민속품은 약 100년 전부터 30여 년 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생활용품과 농기구들로 선조들의 손때가 곳곳에 묻어 있다. 이 민속품은 일상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해 지금은 박물관이나 민속촌 등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16일 증평군 증평읍 신동리에 위치한 도 씨의 아파트(80㎡)에 들어서자 거실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100여 점의 민속품이 한눈에 들어와 마치 골동품점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눈을 돌리자 발코니에도 수십 점의 민속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도 씨에게 ‘다른 곳에도 있느냐’고 묻자 그가 안내하는 안방 장롱 속과 2개의 작은 방 책장·서랍 속에서 요술램프처럼 민속품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 작은 아파트에 있는 것은 500여 점으로 모두 소형 민속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기구 등 부피가 큰 민속품은 집에 보관하기 어려워 그의 어머니(80)가 살고 있는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에 위치한 창고에 무려 2500여 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한국체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9년 역도 국가대표에 선발돼 1년 동안 활약한 뒤 대학 졸업 후 1984년부터 30년째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도 씨가 민속품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0월쯤. 당시 취미생활을 위해 찾은 충주시 앙성면의 한 경매장에서 바람구멍을 내 불이 잘 붙게 만든 철그릇인 풍로를 본 뒤 호기심이 발동해 3만 원에 구입하면서부터 민속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도 씨는 퇴근 후와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인근 경매장과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민속품을 사들였다. 그가 수집한 민속품은 현재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리미, 재봉틀, 호미, 괭이 등을 비롯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고 이름도 생소한 용두레(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퍼올리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 뒤주업(뒤주 속에 넣으면 마치 옹달샘의 샘물이 마르지 않듯이 쌀이 뒤주 속에서 언제나 차고 넘치라는 기원이 담긴 옹기), 풍구(곡물에 섞인 쭉정이·겨·먼지 등을 가려내는 농기구), 따비(논이나 밭을 가는 원시적인 형태의 농기구) 등 300여 가지다.

이 가운데 도 씨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민속품은 경매장에서 1개에 2만 원 내외에 구입한 지름 3.5㎝, 길이 4.5㎝ 크기의 떡살(떡의 문양을 찍는 도구)이다. 떡살은 도 씨가 보유하고 있는 민속품 중 크기가 가장 작은 것으로 그는 모양·제작연도·제작회사 등이 각기 다른 떡살 120개를 수집했다. 또 용두레와 따비 등은 길이가 2m가 넘는 등 도 씨의 수집품은 크기와 가격·모양 등이 천차만별이다.

도 씨가 민속품을 수집하면서 집안 공간을 차지하고 어지럽히자 가족들은 “귀신이 민속품에 붙어 집으로 같이 들어온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또 지인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도 “모아두면 가치가 올라가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옛날 제품을 수집하느냐”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물건이라고 등한시해 점차 잊어지고 사라져 가는 민속품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며 “누군가는 모아 놓은 뒤 후손들에게 알려 줘야 한다는 교육자적 사명감에 더욱 애착을 갖고 수집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도 씨는 “용돈을 모아 민속품 수집 비용을 충당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가 구입한 민속품 중 인두 등 소품들은 5000원 정도의 싼값에 샀지만 대부분 30만 원 내외의 가격에 구입한 것들이다. 도 씨의 수집품 중 가장 고가는 지난 2004년쯤 경매장에서 80만 원에 구입한 경기 반닫이(물건을 넣어두는 상자)다. 이 때문에 도 씨의 수집품에는 희소가치가 높고, 유서가 깊은 골동품 수준의 민속품은 거의 없다. 그는 “좋은 민속품이 경매에 나와도 비싼 가격 때문에 구입하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수집한 민속품의 구입 가격이 총 5000여만 원에 달해 오히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겸연쩍어했다.

도 씨는 수집한 민속품이 한곳에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으나 능력이 닿는 한 계속 구입할 생각이다. 그는 “이제는 가족과 친구·지인들도 민속품 수집을 자랑스러워하며 격려해 줘 보람을 느낀다”며 “그러나 수집보다는 보관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자택과 괴산 고향집을 수시로 오가며 민속품이 부식되거나 썩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통풍시켜 주면서 들기름으로 닦고, 좀벌레 등을 퇴치하기 위해 살충제를 뿌려주는 등 관리·점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도 씨는 그동안 민속품을 수집·관리하는 데 많은 정성을 쏟았지만 이제부터는 수집과 함께 전시활동도 활발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10월에는 처음으로 학교 축제 기간을 전후해 4일 동안 전시회를 열어 제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민속품은 어른들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에게는 선조들의 얼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교직자인 만큼 앞으로 학교종과 책상, 걸상, 등사기 등 학교에서 쓰던 옛날 물품도 집중적으로 모아 학생들에게 옛 선배들의 생활 양식 등을 알려 주는 산 교육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도 씨는 특히 “사라져 가는 민속품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통해 농기계를 재현해 만들어 볼 생각”이라며 “홀로 수집·감상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학생과 지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설전시관을 마련하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자 꿈”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증평 = 고광일 기자 kik@munhwa.com

-문화일보 2013.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