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3-26 14:12
20년간 구토날 정도로 자료수집 몰입…이제 후련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523750.html [362]
‘미술사 자료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 미술평론가 최열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 최열(56)씨는 한국 미술판에서 소문난 ‘일꾼’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 진영의 이론가로 활동했고, 그 뒤로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추적, 발굴하는 작업에 매달려왔다. 그의 저서들 가운데 열화당에서 낸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 1800-1945>(1998)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 1945-1961>(2006)은 철저한 실증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의 지도를 온전히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는 기본 사료들조차 사장됐던 한국 근대미술사의 전모를 복원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손꼽힌다.
날마다 신문·잡지 샅샅이 뒤져
일제~1960년대 자료 95% 찾아

옥살이땐 압수당해 사장될 뻔
“영인본 제작 혼자 하기엔 벅차”

최근 그가 큰일을 냈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의 토대가 된 비장의 문헌 자료들을 국립현대미술관에 모두 기증한 것이다. 학계, 대중의 무관심과 사료 부족 탓에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엄청난 문헌 자료를 망라한 작업이었습니다. 원래는 멋진 해석과 멋있는 글로 정리하는 미술사학을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기초적인 자료 정리도 안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연대기 만드는 일을 하려고 문헌들을 수집하게 됐지요. 당대 문헌이 가장 정확하니까요. <한겨레> 오늘치를 보면 오늘의 현안을 알 수 있잖습니까? 그렇게 해서 모으고 쌓은 자료가 제법 되더군요.”

그는 “오래전부터 사료들을 영인본으로 만들어 다른 연구자들에게 나눠주려고 했는데 힘에 부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그 일을 떠맡기게 됐다”고 기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사라지면 20년 넘게 수집한 자료들이 흩어져 휴지가 될까 걱정이었는데 이제 후련하다”고 털어놓았다.

최씨가 모은 사료들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신문, 잡지의 모든 미술 기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문헌 자료의 원전이 아니므로 별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분량이 1만5천~2만건에 이른다. 20여년간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잡지 도서관 등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신문과 잡지 더미를 뒤지며 찾은 것들이다. “그 시기 자료의 95% 이상을 모았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귀띔했다. 기증한 자료 중에는 80년대 민중미술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수집한 팸플릿, 포스터, 전단, 대자보, 판화, 도록, 사진 등 한국현대미술운동사 자료 2천건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근대미술 자료들은 대개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서 수집하기가 힘들었다”며 “어렵사리 찾았는데 항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프로예맹), 친일 조선미술가협회 등의 민감한 자료들이 검열 등의 이유로 찢겨 있을 때는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고 했다.

“속독으로 유명했던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독서법처럼 옛 신문, 잡지 문장들을 지그재그식으로 크게 훑고 나서 ‘ㄹ’ 자 모양으로 읽으면서 자료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잡지는 대부분 글씨가 일그러져 있고 마이크로필름본은 글씨가 너무 작아 10장 정도 돌려서 보면 구토가 날 정도였어요. 하지만 미술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서울 녹향회, 대구 향토회, 프로예맹 미술부, 창광회 등 일제강점기 미술단체 활동을 기사로 찾아냈을 때나 앞선 연구자들이 거의 언급하지 않던 작가들을 발굴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어렵사리 모은 사료들이 사장될 뻔한 적도 있다. 1991년 민중미술단체 활동 때문에 이적단체 결성 혐의로 옥살이를 했는데 그때 수사기관에서 2.5t 트럭 한대 분량을 압수해갔다. 다행히 이듬해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면복권돼 돌려받을 수 있었다. 최씨는 “정부가 빨간딱지 붙여가며 잘 정리해 놓았더라”며 “증거물 보관기간이 유지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사장됐을지도 모른다”고 웃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자료들은 미술관 학예연구팀에서 이달 초부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목록화를 거쳐 디지털화까지 3~4년이 걸린다고 한다. 실무를 맡은 장엽(49) 학예연구 2팀장은 “신문·잡지 기사들은 근대미술 연구의 기초적 사료들이고, 80년대 최 선생이 주도했던 민중미술운동 관련 사료들도 연구 가치가 높다”며 “한국 근현대미술 연구 센터 구축에 필요한 연구 인프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열씨는 “눈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는 하기 힘든데 제 자료를 바탕으로 후학들의 뛰어난 연구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오랫동안 국내 월북미술가 자료를 발굴해온 월간 <아트인컬처>의 김복기 대표도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 모은 자료들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자료를 정리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글 정상영 기자

- 한겨레 201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