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1-06 13:11
웬열~‘응팔’속 우표·영화 티켓 보며 ‘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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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팔’이 불러온 추억 모으기 열풍



28년 전 추억을 소재로 삼은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즐겨 보는 직장인 전준배(39)씨는 얼마 전 ‘교황 우표’를 사진에 담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드라마 주인공 정봉(안재홍)이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를 수집하는 장면을 본 뒤였다. 교황 방문 당시 ‘국민학생’(초등학생)이던 전씨는 서울 여의도광장에 모인 100만 환영 인파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당시 남학생들 사이에선 우표 수집이 대유행이었다. 교황 우표가 나오던 날, 나도 우체국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던 기억이 또렷하다”며 “드라마를 보고 당시 기억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상기시킨 애틋한 추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서로 공유하는 ‘기억의 박물관’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12월부터 서울시민들이 간직한 추억의 물품을 발굴해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공유하는 ‘서울을 모아줘’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벌써 3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른바 ‘<응팔> 시대’인 20~30년 전 물품과 사연을 올리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1984년 교황우표…1994년 영화표…
시민들, 추억 끄집어내 SNS 공유
“당시 내 모습 생각나 새삼 웃겨”

급변화속 ‘시간의 고향’ 찾는 움직임
‘서울 모아줘’ 기획한 서울문화재단
2018 설립 박물관에 자료 전시예정

‘기억의 박물관’엔 10개 묶음으로 팔았던 ‘시내뻐스’ 승차권, 한국 최초의 상설영화관 ‘단성사’의 영화 달력까지 각자의 추억을 품은 다양한 물품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정아영(36)씨는 ‘서울을 모아줘’ 프로젝트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인기있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떠올리며 1994년 농구대잔치 입장권과 옛 서울극장에서 어머니·동생과 함께 생애 처음으로 봤던 만화영화 <라이온킹> 입장권 사진을 올렸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전업주부 강민구(52)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프레스센터 보도운영부에서 발급해준 자원봉사증 사진을 올렸다. 당시 25살이었던 강씨는 영어 실력을 발휘해보겠다며 영어통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그는 “이 봉사증을 볼 때마다 당시 유행한 내 깻잎머리에 새삼 웃기도 하고,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아 외국인 취재진을 보며 신기해하던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벤트 참여 이유에 대해 “이젠 미래보다 과거를 추억하며 살게 된다. 내 기억이 담긴 물건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추억을 공유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서울의 빠른 변화 탓에 고향으로 느끼지 못하는 시민들이 이른바 ‘시간의 고향’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다 가는가’에 대한 성찰적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함께 ‘박물관도시 서울’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이 캠페인을 시작한 서울문화재단은 물품을 올린 시민들을 대상으로 오는 4월과 9월에 ‘오프라인 수집가 프로그램’도 연다. 최문성 서울문화재단 팀장은 “등록된 사진과 사연들은 2018년까지 설립될 서울의 크고 작은 9개 박물관을 구성할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고, 가치평가에 따라 ‘서울시 미래유산’ 인증대상 후보도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 한겨례신문 201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