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4-27 10:18
[물성예찬]<7>1960∼1990년대 장난감 수집 현태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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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1980년대 학교 앞 문방구는 하굣길 아이들의 성지(聖地)였다. 문구류뿐 아니라 싸구려 쥐포를 비롯한 ‘불량식품’이 지천이었고, 작은 공간 가득 진열된 장난감은 가격도 저렴해 코흘리개들의 용돈으로 ‘풍요로운 쇼핑’이 가능했다. 복제판 조립식 로봇은 요즘 피겨와 비교하면 색상이나 만듦새가 조악하기 그지없고, 싸구려 마론 인형은 8등신 금발 바비에 비하면 가분수 숏다리에 머리숱도 적었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24일 찾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다복길의 ‘뽈랄라수집관’은 그 시절 문방구에서 팔던 장난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99m²(약 30평) 남짓한 지하공간에는 1960년부터 1990년대까지 각종 장난감과 인형, 만화책, 잡지 등이 전시돼 있다. 주인조차 그 수량을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0.1t 거구에 뿔테 안경, 턱수염이 만화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현태준 씨(46)는 이곳의 관장이자 장난감들의 주인이다. 만화가와 저술가, 장난감 연구가, 주점 ‘뽈랄라싸롱’ 주인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그는 스스로를 ‘짝퉁 아티스트’란 의미의 ‘아리스트’라고 부른다.

수집품 중 값비싸거나 세련된 아트 피겨는 드물다. 지금 30, 40대들이 유년시절 가지고 놀았던 짝퉁, 일본이나 미국 만화캐릭터를 카피해 만든 국산 모조품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진짜 지구를 지켜줄 것 같은 오리지널 캐릭터들과 달리 이 수집품들은 ‘표정이 어눌하거나 자신감이 없어 보이거나 혹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고 현 씨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산 슈퍼맨은 ‘경상도 아저씨’ 분위기가 나고, 독수리 오형제의 꽃미남 1호는 ‘두메산골 청년’을 닮았다. 제작비를 아끼려고 다른 인형의 몸에 얼굴만 바꿔 끼워 덩치만 훌쩍 커진 ‘사춘기 아톰’도 있다.

“애들 장난감 따위에 완벽을 기할 만큼 여유가 없었던 당시 생활상이 반영된 거죠. 열악한 환경에서 어른들은 대충대충 만들었고, 아이들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받아들였던 허술하고 인간적인 정서…. 어찌 보면 참 풋풋했던 시절 이야기들이 담겨 있죠.”

그는 외환위기 당시 동네 문방구 주인 할아버지로부터 10만 원에 ‘떨이’로 완구를 몽땅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대형마트 등에 밀려 문 닫는 전국의 문방구를 순회했다. 아내 몰래,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장난감을 모았다. 뽈랄라수집관에는 수집품 일부만 전시하고 있고, 그의 서대문구 연희동 작업실에는 이곳의 3배에 달하는 수집품들이 전시를 기다리고 있다.

“게임기가 등장하면서 장난감이 많이 줄었죠. 요즘 장난감은 죄다 유아용이에요. 그런 건 부모들이 두뇌개발 같은 ‘엉큼한’ 생각에서 구입하는 거라 제 관심사는 아니죠. 그 대신 요즘엔 과자에 들어있는 ‘따조’나 캐릭터 카드를 모아요. 발명특허 냈다가 망한 아이디어 상품이나 천냥마트 등에서 파는 ‘땡처리’ 잡동사니도 수집하고요.”

‘싸구려’라지만 그동안 쓴 돈이 적지 않다. 수집관과 창고 유지비로만 매달 수백만 원이 드는 탓에 다른 일로 돈을 벌어 모두 수집품에 쏟고 있다. 아내의 시름이 날로 깊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수집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한 시대를 살았던 개인들이 관계를 맺었던 물건들이잖아요. 나와 관계없는 고급제품보다 이런 것들이 더 의미 있다고 봐요. 임금님 물건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과 같죠.”

현 씨는 앞으로 그동안 모은 수집품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한꺼번에 전시할 공간을 찾는 게 목표다. 그 바쁜 가운데 조만간 어린이잡지와 선데이서울을 섞어놓은 아저씨용 잡지 ‘오빠생활’을 낼 예정이다. 이 같은 ‘B급 사랑’의 근원은 뭘까.

“가난하고 꼬질꼬질한 우리 집을 마냥 부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철이 들고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면 애정이 생기잖아요. 우리의 과거 일상에서 촌스럽고 후지다고 폄하되는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관점을 달리하면 예뻐요.”

-동아일보 201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