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5-24 15:53
커버스토리 / 기억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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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폴란드 바르샤바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에마뉘엘 링겔블룸 기록물이 발견된 우유통

“21세기에 인류가 쏟아내고 있는 모든 형태의 기록은 그 이전 세기 모두의 기록을 합친 것보다 많지만, 이들 기록은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지난 199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세계의 기억’; Memory of the World) 사업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다토 하비바 존(Dato’ Habibah Zon) 말레이시아 국가기록원 사무총장이 한 말이다. ‘정보의 홍수’라는 말에 걸맞게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살고, 그만큼 많은 정보들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 내내 이렇게 쌓여온 기록은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을까? 또한 단순한 보존을 넘어, 기록이 우리의 삶과 미래에 가치를 더하는 매개가 되도록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유통에 숨긴 진실

지난 1월 27일,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을 맞아 유네스코 지역사무소와 유엔 정보센터를 포함한 전 세계 50개국 330여 곳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누가 우리 역사를 기록할 것인가」(Who Will Write Our History)의 시사회가 열렸다. 2차 세계대전 시기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 수용된 유대인들의 기록을 모은 ‘에마뉘엘 링겔블룸 기록물’(Emanuel Ringelblum Archives)의 수집 과정을 다룬 이 영화는 총과 주먹 대신 펜과 종이로 나치의 거짓말에 맞서 싸운 이들의 위대한 여정을 보여준다. 역사학자, 정치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링겔블룸과 그를 따르던 비밀 조직원들은 바르샤바 게토에 갇힌 4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의 삶과 역사적 증언이 담긴 쪽지를 모아 여러 개의 우유통과 상자에 숨겨 보관했고, 이렇게 보관된 기록물은 링겔블룸이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남겨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기록물의 일부가 1946년과 1950년에 잇따라 발견되어 약 2만5천 페이지에 달하는 피해자들의 삶과 절규를 세상에 알렸다. 1999년 유네스코는 “고유성과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이 특별하다”고 평가하며, 링겔블룸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했다.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링겔블룸과 그의 조직이 메모, 편지, 그림, 쿠폰 등, 그곳에서 생산된 모든 형태의 기록물을 목숨을 걸고 모은 이유는 분명하다. 기록이 게토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알릴 역사적 진실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과 그 협력자들이 링겔블룸의 활동을 방해하며 눈에 불을 켜고 기록물을 찾아내려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기록에 담긴 그곳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먼저 목숨을 잃은 쪽은 링겔​블룸과 조직원들이었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은 쪽은 나치가 아닌 ‘우유통 속에 보관된 기억’이었다. ​

링겔블룸 기록물의 사례에서처럼 문자와 종이가 발명된 이래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이어져 왔다. 기억과 그 기억을 담은 기록을 만들고 지키려는 자와, 이를 없애려는 자 사이에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기도 했다.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가 “역사란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호모 메모리스』, 책세상)이라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한 투쟁에서 기억이 망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머릿속의 기억도, 그 기억을 담은 기록도, 무척 부서지기 쉬우며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 사라져가는 1차적인 이유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의 기억력과 수명에 분명한 한계가 있어서다. 기억을 평생 또렷하게 간직하기도 어렵고, 그러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도 100년을 살기가 쉽지 않다. 기록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머릿속 ‘원본 기억’의 유효기간이 겨우 그 정도라는 뜻이다. 기억을 간직한 자, 즉 ‘호모 메모리스’로서 인간의 삶의 유한성은 여전히 일제 식민 통치라는 과거사와 싸우고 있는 한국인에게 특히 와닿는 부분이다. 지난 1월 김복동 할머니에 이어 3월에 곽예남 할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일제의 잔혹한 만행을 몸소 기억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2명 밖에 남지 않았다. 비록 이 할머니들의 증언이 끊임없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고 역사적 증거도 수없이 많지만, 그 모든 기억과 아픔을 직접 증언할 수 있는 할머니들에게 이제 남은 날이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아픔이다.

영구적이지 못하며, 때로는 부정확하기도 한 인간의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인류는 문자와 종이에 많은 것을 의지해 왔다. 정확하게 쓰여지고 주의깊게 보관된 기록물은 매우 오랫동안 기억의 유한성을 훌륭하게 보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물 역시 수명이 무한하지는 않다. 기록 보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도 지진이나 해일 등,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기록물의 안전은 언제나 위험하며, 전쟁과 분쟁 상황에서 고의로 파괴되거나 약탈되는 일도 적지 않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원본 기록물의 보관 이상으로 사본이나 목록 작성 같은 ‘기록물에 관한 기록’을 작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유네스코에서 열린 ‘기록유산의 지속가능한 보존을 위한 재난 위협 경감 및 관리’(Disaster Risk Reduction and Management for Sustainable Preservation of Documentary Heritage) 정책포럼에서 유네스코의 모에즈 착축(Moez Chakchouk) 정보커뮤니케이션 사무총장보도 “기록유산들의 전반적인 보존 상태는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연재해로 인해 소실되는 중요 기록물이 적지 않다”며 “이러한 기록물들은 문화유적이나 걸작 예술품들에 비해 소실 시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보존, 그 이상의 공유

부주의한 보관 때문이든 천재지변 때문이든 이렇게 기록이 사라지고 나면, 그 기록에 많은 것을 의지해야 하는 한 사회의 역사 또한 잊혀질 수 있다. 부끄러운 역사나 참혹하고 고통스런 역사일수록 그렇게 잊혀지기도 쉽다. 이러한 집단 기억상실(collective amnesia)에 빠진 사회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대신 범람하는 가짜뉴스에 휘둘릴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유네스코가 1992년에 세계기록유산(‘세계의 기억’; Memory of the World) 사업을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네스코는 “약탈과 밀수, 조직적 파괴, 부적절한 보존 장비와 재원 부족 등으로 인해 전 세계의 기록물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들 기록을 보존하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알바니아계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파괴하려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사라예보 시청 도서관을 폭격해 희귀 고문서를 비롯한 150만 권에 이르는 장서가 소실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록 보존과 관련해) 인류가 지난 수세기동안 안고 있던 문제들이 전쟁과 사회적 혼란, 자원 부족 등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유네스코의 분석이 그대로 현실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기록물의 안전한 보관만이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유네스코는 이렇게 보존된 기록을 누구나,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존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에 유네스코는 ▲ 가장 적절한 기술로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을 돕고 ▲ 기록유산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을 높이며 ▲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을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3대 목표로 꼽는다.

최근 유네스코가 ‘디지털 시대의 기록 보관’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 것도 이러한 목표와 무관하지 않다. 종이에 비해 훨씬 방대한 기록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오늘날의 디지털 기록물은 소실이나 시대 간 단절의 위험이 더 커졌다는 것이 유네스코의 분석이다. 유네스코는 “시디롬(CD-ROM) 같은 매체는 수명이 길지 않으며, 여기에 비트와 바이트(bits and bytes; 디지털 매체의 기록 저장 단위)가 안전하게 보관된다 하더라도 (호환성 문제로) 오래된 데이터 포맷을 최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읽어내지 못할 가능성은 언제나 크다”고 분석한다. 또한 “전 세계의 도서관과 박물관, 기록물 보관소는 이를 알면서도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며, 유네스코가 디지털 기록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급해 기록물들이 널리 공유되고 후대에 안전하게 전해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통과 평화의 매개로서의 기록

유네스코의 관심이 그저 오래되고 희귀한 기록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식과 정보를 보존하고 확산시키는 데 있다는 점은 세계기록유산 목록의 다양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현재 세계기록유산 목록에는 124개국 및 8개 기관의 432건의 기록물이 등재돼 있다. 여기에는 인류가 절대 왕정 시대를 넘어 국민의 자유를 옹호하는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시발점이 된 영국의「대헌장」(Magna Carta), 나치의 잔학한 학살과 인권 유린을 전 세계에 알린 『안네 프랑크의 일기』, 500년 왕조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세히 담긴 『조선왕조실록』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들 유산처럼 누구나 떠올릴 만한 세계적인 기록유산 외에도,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다루고 있는 기록물의 범위는 그림이나 지도, 음악 등의 비문자 자료(non-textual materials)와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넓다.
그러한 예 중 하나로 지난 2013년 등재된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기록물’(Montreux Jazz Festival Archives)을 들 수 있다. 이 기록물에는 무려 5천 시간이 넘는 재즈 연주 실황 녹음과 영상이 포함돼 있는데, 유네스코는 이것이 “보편적 중요성과 다문화적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고 보고 등재를 결정했다. 또한 전설적 재즈 뮤지션들의 흔치 않은 협연과 자유로운 표현을 보며, 더 많은 사람들이 타문화와 소통하며 특별한 문화적 경험을 갖길 바라는 뜻도 담고 있다.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된 유산 중에는 소송 문서도 있다. 2001년 등재된 호주의 ‘마보 사건 소송 관련 문서’(The Mabo Case Manuscripts)는 1992년 6월 호주 고등법원이 법적으로 ‘주인 없는 땅’으로 취급됐던 토지에 대한 원주민들의 소유권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 내용과 그 과정이 담긴 문서다. 유럽인들이 호주 땅에 발을 딛기 훨씬 전부터 살아왔음에도 그저 주인 없는 땅의 유령처럼 여겨졌던 호주 원주민들의 아픔과, 정복과 침략이 반복되던 제국주의의 역사가 이 소송 기록에 담겨 있다. 이에 유네스코는 “(원주민의 인권이) ‘침략’ 문화를 지닌 기본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세계 역사상 극히 드문 사례”로 평가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기록물로는 2015년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도 빠질 수 없다. 1983년에 녹화된, 비디오테이프 463개(방송 시간 약 453시간 45분)가 포함된 이 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된 기록물 중에서는 비교적 최근 기록에 속한다. 한국방송공사에서 관리하는 자료로 특별히 소실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이 자료에 담긴 의미, 특히 평화를 갈구하는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는 감동적인 내용에 큰 가치를 매겼다. 즉, 전쟁과 분단의 참상을 실감케 해 주며 평화를 염원하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내 주는 이 영상이 ‘인류의 기억’으로서 널리 퍼질 때, 전 세계에 평화의 싹을 틔우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모두의 기억’이 되기 위해

이처럼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정말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기록물을 다루며, 이들 기록이 이미 그 자체로 인류가 잘 지키고 후대에 넘겨주어야 할 ‘기억’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오늘날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유네스코 내에서 회원국 간 마찰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2015년 ‘난징 대학살 기록물’의 등재 후 일본이 표출했던 격렬한 반감과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등재 추진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대립 등, 최근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둘러싸고 국가와 민족 차원에서 다시금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 벌어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절대 잊지 못할 기억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감추고 싶은 기억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영광의 기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욕의 증거일 수도 있다. 평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유네스코라는 조직은,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태생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당사자 간 대화와 이해가 언제나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조이 스프링어(Joie Springer) 세계기록유산 등재소위원회 위원의 말처럼, 유네스코는 다시 한번 냉혹한 국제 현실 속에서 이해와 소통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이 모든 과정 역시 ‘세계의 기억’으로서 후대에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유네스코뉴스 2019.4 vol.754 김보람 『유네스코뉴스』편집장

참고자료
unesco.org “Global Screening of Who Will Write Our History on 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
“UNESCO Hosts a Global Policy Forum on Disaster Risk Reduction for Preserving Documentary Heritage”, “PERSIST: UNESCO Digital Strategy for Information Sustainability”
heritage.unesco.or.kr/mows “세계기록유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