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5-24 11:29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29]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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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쓴 편지, 양피지에 잉크,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도서관 소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가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보낸 자기소개서(자소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 가장 비싸게 팔린 ‘구세주’, 가장 많이 복사된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에게도 앞날이 불투명한 ‘취준생’ 시절이 있었다. 그는 피렌체의 거장 베로키오 아래서 수년간 도제 생활을 하다 독립했지만, 당시 피렌체에는 탁월한 화가가 너무 많았다. 레오나르도는 처음 주문받은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루도비코에게 고용되어 밀라노로 떠났다.

‘나의 저명하신 영주님께’ 바치는 ‘자소서’에서 그는 1번부터 10번까지 번호를 매겨 주로 그가 개발한 무기와 군용 장비를 설명했다. 이동과 설치가 쉬운 교량, 소음 없이 침투용 땅굴 파는 법, 폭풍우가 몰아치듯 자갈과 연기를 발사하는 이동용 대포와 방탄 전함 건조법 등을 알고 있으며, 믿어지지 않는다면 시연해 보이겠다고 썼다. 원래 루도비코는 서열상 권좌와 거리가 멀었으나, 형이 살해당한 다음 온갖 전투와 암투를 겪고 마침내 권력을 쥔 인물이다. 레오나르도가 회화나 조각도 잘할 수 있다고 10번에서야 짧게 언급한 이유는 군사력이 우선이었을 고용주의 현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취직에 성공한 레오나르도의 공식 직함은 ‘병기 공학자’였다.

이 편지는 16세기 말에 한 조각가가 레오나르도가 남긴 온갖 문서 1119쪽을 한데 모은 방대한 전집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에 들어있다. 그 안에는 다양한 발명품의 설계도가 들어있지만, 지금까지 레오나르도가 ‘신이 내린 천재’라는 칭송을 듣는 건 놀라운 무기를 만들어서가 아니라, 감동적인 예술을 남겼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2022.05.24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