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28 10:59
한국에만 있던 귀한 '봉함인' 독일부부 사후 기증 약속

훼쉘레 박사 부부, 40년 모은 197점 국립민속박물관 보내기로
주한 獨문화원 부원장 시절
봉투에 찍던 도장 '봉함인' 틈틈이 아내와 함께 수집… 최근 기증 유언장 보내와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기에 고국 보내는 건 당연한 일"

1970년대 초 서울 인사동 골동상들 사이에서 한 '독일인 손님'이 눈길을 끌었다. 값나가는 도자기나 그림은 쳐다보지 않고 낡은 인장(印章)만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왕실이나 유명 예술가들의 인장이 아니라, 선인들이 편지를 봉할 때 봉투에 찍는 '봉함인(封緘印)'에만 관심을 쏟았다. 도장 주인이나 새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봉함인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였다. 1971년부터 8년간 주한 독일문화원 부원장으로 일한 페터 훼쉘레(75) 박사였다.

훼쉘레 박사 부부는 최근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에 '부부가 세상을 떠난 후 봉함인 133점과 인장 등 197점을 모두 기증하겠다'는 유언장을 보내왔다. 박물관 측은 "수집가들이 생전에 소장품을 기증하는 경우는 국내에도 종종 있지만, 훼쉘레 박사처럼 사후 기증을 약속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했다.

봉함인은 편지를 주고받을 때 다른 사람이 열어보지 못하도록 봉투 뒷면에 찍는 도장이다. '근봉(謹封)'이나 '봉하다'는 뜻의 '함(緘)'처럼 짧은 글자를 새기지만, 소식을 전해주는 기러기와 물고기 그림이나 철학적 글귀를 적은 봉함인도 더러 있다. 옛 서신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로, 국내엔 별로 남아있지 않다.


40년간 수집해온 봉함인(封緘印)과 인장 197점을 민속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한 훼쉘레 박사 부부. 훼쉘레 박사는“독일에서 한국 봉함인을 새기는 전각가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양 교수 제공
26일 독일 남부 로텐부르크 부근 슈타인스펠트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훼쉘레 박사는 "봉함인은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인장"이라며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니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옳다"고 말했다. "자식들에게 물려줘 봤자 우리 부부처럼 애정을 갖고 지킬 것 같지 않고, 독일 박물관은 한국 봉함인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니 제자리로 돌아가야지요."

훼쉘레 박사는 튀빙겐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방콕, 아테네, 카라치, 트빌리 등 해외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 교육을 책임졌다. 방콕에서 일할 때 한문학에 흥미를 느껴 한국 근무를 자원했다.

"1972년 서울의 에밀레 박물관에서 발간한 책을 읽다가 봉함인을 소개한 내용을 봤어요. 손가락 끝만 한 작은 공간에 그림 같은 글씨를 새겨넣은 방촌(方寸)의 예술에 반했습니다." 처음엔 인장에 새겨진 글자를 해독하지 못해 머리를 싸맸다. 그러다 당대 최고 전각가(篆刻家)로 꼽힌 청사(晴斯) 안광석(1917~2004) 선생을 만났다. 위창 오세창에게 전각을 배운 청사는 독일인이면서 우리 봉함인에 관심을 쏟는 훼쉘레 박사에게 전각을 가르쳤다.

"선생께서 손수 녹차를 끓여 따뜻하게 대접해 주시던 장면이 지금도 꿈결처럼 아득합니다. 인장을 새기고 설명하면서 차를 마시는 일이 그분에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어요." 청사는 환갑을 맞은 1977년 제자 훼쉘레 박사에게 인장 60개를 선물하기도 했다.


장수를 기원하는‘延年益壽’(오른쪽), ○湖가 보내는 편지라는 뜻의‘○湖傳信’(왼쪽)이란 글이 새겨진 봉함인.
일중(一中) 김충현(1921~2006) 선생에게도 8년간 서예를 배웠다. 일중은 경복궁 건춘문 현판을 비롯, 충무공 기념비와 삼성그룹 옛 로고인 한자 '三星'을 남긴 서예 대가다.

아내 헬가(75)씨와의 인연도 봉함인이 한몫했다. 주한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던 헬가씨가 마음에 들었던 훼쉘레 박사가 처음 선물한 게 바로 봉함인이었다. "봉함인을 받고 좋아하던 아내도 수집에 나섰고, 몇 년 후 결혼과 함께 두 사람의 컬렉션을 하나로 합쳤어요."

훼쉘레 박사는 1979년 한국을 떠난 후에도 전각과 서예를 계속했고, 2000년 은퇴 후 봉함인을 새기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 2005년엔 한국에서 '한국의 봉함인'이란 연구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1970년대 독일문화원 강사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은 이원양 한양대 명예교수가 번역을 맡아 출간을 주도했다. "훼쉘레 박사는 그냥 수집가가 아니라 봉함인을 통해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 학구적 애호가예요. 2009년 박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젠 봉함인을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이 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교섭, 훼쉘레 박사의 소장품 기증을 주선했다. 천진기 관장은 "소장가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애장품을 마음껏 즐기고, 나중에 공중(公衆)에 돌려주는 사후 기증은 기증 문화를 확산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2012.9.2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7/20120927029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