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9-15 23:12
[웹진아르코] 방대한 예술 자료의 성 “러시아국립예술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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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아카이브 시리즈_6(러시아국립예술도서관)

▶ 방대한 예술 자료의 성 “러시아국립예술도서관”

(Российская 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Библиотека по искусству)

글 : 장지원(대한민국예술원 인턴)



러시아국립예술도서관





찬란한 러시아 무대예술의 역사적 상징인 볼쇼이와 말리 극장을 중심에 품으며 문화예술의 향기를 짙게 풍겨내는 도시, 모스크바. 그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다양한 공연예술 관련 기관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현지 예술인들의 오랜 서재이자 연구실과도 같은 역할을 맡아 온 러시아국립예술도서관이 있다.



러시아국립예술도서관은 1921년 러시아 정통연극의 요람인 국립 말리극장 부속학교(현 모스크바 국립 셰프킨 고등연극학교)의 연극전문 도서관으로서 처음 세워지게 되었다. 도서관의 설립은 연극학교 교수진과 더불어 말리극장의 배우, 스태프들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의 열정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단순한 도서자료의 제공을 넘어 창작의 최전선에 있는 공연예술인들이 다양한 시각자료들과 전시 등을 통해 다방면의 주제에 대한 지식과 영감을 얻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연극인의, 연극인에 의한, 연극인을 위한" 도서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간에서 연구하고 작업한 무수한 연극인들 가운데는 스타니슬랍스키, 메이어홀드, 포포프와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새삼 가슴 벅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극전문학교의 부설로 시작된 도서관인 만큼, 설립초기부터 전통적으로 연출가, 배우, 예술감독, 무대감독, 의상 및 무대디자이너를 비롯한 현업 예술인들과 학생들을 위한 연구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 공간에서 창작의 최전선에 있는 예술인들은 작품선정을 위해 희곡 컬렉션을 뒤적이거나, 새로 맡은 배역의 연구를 위해 선배들의 다양한 시도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무대나 의상디자인을 고민하며 특정 시대와 장소의 사진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스케치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생전에 이 연극도서관을 매우 특별한 공간으로 언급하며 "소중한 지식의 근원"이었다고 일컬은 바 있다. 또 러시아 국립극단의 한 원로 배우는 "내 모든 공연준비의 절반은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회고할 만큼, 이 도서관은 여러 러시아 공연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창작 기반 환경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처음 여섯 명의 스태프로 시작한 러시아국립예술도서관은 현재 12개의 분과를 가진 국가예술전문도서관으로 크게 성장해 개관 80주년을 앞두고 있다. 18C 중반의 희귀자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은 단행본, 잡지, 희곡, 신문기사, 공연팸플릿, 사진, 엽서, 스케치, 육필메모,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예술 관련자료를 구비하고 있다.



이는 국가문헌보존소, 말리극장, 러시아희곡작가협회 등에서 수집해 온 자료들이 장서의 근간이 되었고, 이후 국립 예술원, 다양한 개별 연극인 컬렉션들로부터 자료를 들여오면서 더욱 풍성한 콘텐츠를 갖추게 되었다. 한편 볼쇼이극장, 모스크바 예술도서관, 체코국립도서관을 비롯한 국내외 타 도서관들과의 장서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관련분야 도서관의 예술도서 확충을 지원하고, 독특하고 전문성 있는 자료들의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고 있다.






특히 도서관이 자랑하는 컬렉션 중 하나는 2,500여 점의 필사본 희곡 컬렉션과 더불어 렌스키, 스타니슬랍스키, 네미로비치 단첸코, 안톤체홉, 샬리아핀, 메이어홀드 등 러시아 공연예술계 거장들의 육필이 담긴, 실제 공연을 위해 사용되었던 1,000여 점의 희곡대본 및 연출노트들이다.

그리고 1890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러시아 공연예술인들의 무대 혹은 프로필 사진 컬렉션 역시 선배 예술인들의 작업과정과 숨결을 보다 가까이 느끼고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또한 공연예술과 관계되는 925,000여 건의 신문기사 스크랩은 해당 주제에 대한 것으로는 러시아에서 가장 방대하고 깊이 있는 컬렉션으로 알려져 있으며, 75,000점의 공연팸플릿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연의 흔적을 당대의 목소리로 보다 생생하게 되짚어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한편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모스크바와 러시아의 여러 도시들의 건축물들을 담은 사진 컬렉션과 국내외 다양한 지역의 고유 의상과 스타일이 담긴 엽서 컬렉션, 또 국내외의 다양한 패션잡지들도 항상 인기가 높은 코너 중 하나라고 한다. 언뜻 공연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도서관에서 건축이며 패션은 주제에서 다소 벗어난 듯도 싶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사실 연극이란 작업이 어떤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상, 캐릭터 창조와 무대, 의상의 구상에 있어서는 좋은 참고가 되는 자료들인 셈이다. 이처럼 실제로 작품창작을 위해 활용가치가 높은 주제들에 대하여 장르의 제한에 머무르지 않는 현실적인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이용자의 실제적 정보요구에 발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도서관은 기존의 연극 도서관을 넘어 예술전반을 아우르는 "예술"도서관으로 그 주제범위를 넓히게 되었고, 현재는 연극, 영화, 미술, 장식예술, 건축, 역사와 문학이론, 예술사회학, 문화이론, 러시아 문학, 세계 역사 등 인문사회의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고 있다.



창작을 위한 지식의 습득과 교류를 위해 특성화된 공간인 만큼, 러시아국립예술도서관에서는 설립초기부터 소장자료를 기반으로 한 전시, 강의, 워크숍, 낭독회 등의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전시는 이용자들의 관심영역을 넓히고, 소장자료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관객들의 호응도 높다고 한다. 교육 프로그램도 활성화되어 있는데, 러시아 국립 연극학교, 현대예술학교 등에서 도서관의 자료들을 수업과 연계하여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이미지 컬렉션은 무대의상 디자이너 교육과정에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비디오 컬렉션의 자료들을 통해서는 "말리극장과 오스트롭스키" "펠리니와 채플린의 광대들" "연기기법"과 같은 강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한편, 러시아의 대표적인 예술정보기관답게 관련 학회 및 세미나 개최, 연구서적 발간 등 러시아 공연예술연구의 중심으로서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국립도서관, 페테르부르그 연극박물관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러시아 희곡DB구축사업을 비롯하여 예술자료의 정리 및 서지화 작업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국 각지의 도서관과 정보센터, 극장, 영화 스튜디오, 출판사, 잡지사, 방송사 등에 예술정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공연의 제작이나 무대예술 다큐멘터리 및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자료의 소장에 그치지 않고, 축적되어 온 무대예술 역사의 단편들을 하나 둘씩 꺼내어 동시대의 예술인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풍부한 자료를 기반으로 콘텐츠의 생산과 연구작업에까지도 깊숙이 관여하는 도서관의 적극적인 모습이 돋보인다.



공연예술은 책상머리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학문은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품의 분석과 무대의 창조를 위한 연구의 중요성이 덜한 것은 또 결코 아니다. 선배예술인들의 작업의 흔적들, 또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수많은 공연의 기록들과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청각 자료들은 연구의 훌륭한 재료이자 또 다른 창조를 위한 상상력의 발로가 될 수 있다. 작품을 위해 이러한 자료들을 찾아 자연스레 모여드는 예술인들의 모습, 또한 그런 작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풍부한 자료와 전문성을 갖고 준비된 공간이 있음은, 한 나라의 문화예술의 "내공"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화예술을 보존, 연구,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자 창조의 기반으로서의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의미와 그 잠재력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