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1-03 10:41
[Why] 한국 古典에 빠진 영문학자, 이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징비록·목민심서 이어 조선왕조실록 번역 나선 최병현 호남대 교수

멀고 험했던 고전 번역 '선구자의 길'
IMF 시절 정치권의 공방전 보다 불현듯 '징비록' 떠올라 작업 시작
관직 등의 용어 하나하나 번역하고 美대학 엄격한 출판심사 거치니
책으로 나오는 데 6년 걸려

세계화 되지 않으면 '있어도 없는' 것
한국어로 돼 있으면 한국인만 봐… 中·日보다 고전 번역 100년 늦지만
첫 번역작 징비록 출간되자마자 美 주요대학 동양학 교재 되는 등
우리 고전도 국제적 경쟁력 충분

영어 배워야 하는 진짜 이유는…
서양 작품만 분석하는건 의미 없어… 우리 문화를 수출할 수 있어야

최병현 교수는“다행스러운 것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최근 조선왕조실록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부분적이나마 번역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그러나, 정작 번역을 해낼 수 있는 고전번역가가 많지 않고, 시행착오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고 말했다./김영근 기자 광주광역시 어등산 자락에 자리 잡은 호남대학교 캠퍼스는 아침나절 햇살이 황룡강 물안개와 어울려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침 월든 호숫가를 연상하던 그때 고전 번역가이자 작가, 그리고 학자인 최병현(62) 영문과 교수는 산기슭 연구실에서 그 호숫가의 주인공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얘기했다. 옳고 그른 것은 결코 숫자로 따질 것이 아니라며 역사적으로 옳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을 갖는 창조적 소수의 삶 이야기를 꺼냈다.

"밀턴은 '소수지만 그 독자들을 위해 실낙원(失樂園)을 쓴다'고 했어요. 저는 창작과 고전 번역, 모두 그런 정신으로 합니다."

최 교수는 "번역은 세상의 무관심을 생각하면, 마치 물도 없이 헤엄치는 것 같고, 적도 없이 싸우는 것만 같은 것"이라며 우리나라 고전 영역(英譯)의 개척자이자 선구(先驅)로 지내온 역정(歷程)을 토로했다. 그의 책상에는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 영역에 필요한 책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내년 초까지는 번역을 마무리할 예정.

그는 2003년, 임진왜란의 원인과 국난 극복 과정을 생생하게 기술한 유성룡(柳成龍·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 영문 제목 The Book of Corrections)', 2010년엔 한국 실학의 집대성자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영문 제목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Manual for All Administrators)'를 국제 기준에 맞추어 미국 대학에서 출판, 국제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과 일본 고전 영역에 비해 100년 이상 뒤졌다는 우리 고전 영역의 깃발을 그는 홀로 올려왔다.

◇"조선왕조실록의 세계화는 제2의 팔만대장경 사업"

―이번엔 '태조실록'이란 역사 기록에 도전합니다.

"착수한 지 만 2년이 되었어요. 지금 1차 번역을 했고요. 주석을 달아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고 확인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내년 초에나 내놓을 수 있을 듯합니다. 번역문을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 싣고, 미국 대학에서 출간하려 합니다."

―'태조실록'을 택한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제151호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기록 유산입니다. 아직껏 한글 외에는 번역된 적이 없으니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선조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자랑스럽게 만들지 못한 것이 오히려 부끄러울 따름이죠. '이걸 번역해야 하는데…' 하고 고심해오던 차에, 2년 전 당시 한국국제교류재단 김병국(고려대 정외과 교수) 이사장께서 연락해왔어요. 영역본 '목민심서'를 읽었다며 '조선왕조실록' 번역을 권유해온 거예요. 그래서 감히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작업해보니 약 40만 단어가량입니다. 한자(漢字)를 하나하나 영역하는 경우 곡괭이로 땅속 깊이 박힌 나무뿌리를 캐는 것 같고, 한 줄 전체를 번역하면 소로 밭 한 이랑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번역이 완성되면 어떤 씨앗을 심어도 싹을 틔울 것 같은 옥토로 변하니, 이 기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어요?"

―'태조실록' 이후에도 실록 번역을 계속하는 겁니까.

"실록 전체를 번역하는 일은 개인으로선 불가능하지요. 그렇지만 '태조실록'을 제가 마치면, 장차 나머지는 후대의 학자들이 하리라 기대합니다. 저는 '태조실록'을 번역하면서 이것을 잘 세계화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유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15권에 달하는 '태조실록'만 해도 불교 국가가 유교 국가로 전환하는 과정 등을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무려 2000권의 방대한 실록은 실로 '대양의 심해'와도 같을 것입니다. 이 사업은 한 개인의 능력 밖이기 때문에 번역가와 영문학자, 역사학자, 국문학자 등 모든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 국민이 합심해서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의 팔만대장경 사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고전은 세계인과 공감하는 내용이어야"

―영문학자가 고전 번역에 앞장선 것은 이례적입니다.

"1990년대 말 몇 년 동안 서울 용산의 메릴랜드대학에서 미국 문학과 한국 문학을 동시에 가르친 적이 있었어요. IMF 구제금융 위기가 발생한 1997년 퇴근 중 라디오를 듣는데, 여야의 책임 공방이 치열하더군요. 차는 막혀 답답한데 공방은 한 치도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것이 '징비록'이었어요. 국난 상황이 어쩌면 그렇게 400년 전 임진왜란 때와 비슷하게 느껴지던지. 바로 집에 와서 서문을 번역했는데, 성경 창세기 말처럼 '보기에 좋았더라'였죠. 구구절절 살아서 나오는 듯했어요. 번역 착수 6년 만에 우여곡절 끝에 미 버클리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출간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출판하려면, 동양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 세 분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합니다. 번역, 주석, 용어 정의 등 여러 면에서 엄격한 (국제)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 고전이 미국 유명 대학에서 출판된 첫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출간 후 반응이 어떨지 고심은 안 했습니까.

"과연 우리 고전이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서양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징비록'이 나오자마자 세계로 보급되었어요.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동양학을 가르치는 미국 주요 대학들이 교재로 사용하고, 전문 저널에 실린 서평 등이 이구동성으로 호의적이고, 위키피디아와 사람들이 인용 내지 참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존' 독자 평가에서 별이 다섯 개 붙었어요. 일단 경쟁력을 확인한 것이지요. 우리 고전의 경쟁력에 대한 확신이 들자 바로 '목민심서' 영역에 착수했습니다. 미 캘리포니아대학 출판사에서 나왔고, 역시 캘리포니아대학, 콜롬비아대학, 펜실베이니아대학, 워싱턴(시애틀), 미시간 대학 등 미국과 캐나다 등지의 주요 대학에서 동양학 교재 내지 참고서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징비록(왼쪽)·목민심서 번역서. ―'목민심서'를 선택한 이유는.

"이것은 어떤 텍스트를 우선 세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즉 텍스트의 내용이 외국 독자들과 공유될 수 있고, 오늘날의 상황과 상관성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징비록'은 16세기 말 한·중·일 삼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결코 한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지요. '징비록'은 국가의 위기 또는 국난에 관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목민심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부의 무능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세계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이지요."

◇"우리에겐 고전 번역 운동이 절실"

―앞으로 '번역' 활동이 더욱 기대됩니다.

"내년 '태조실록' 출간을 마무리하고요. 바로 지금까지 번역 과정에서 겪었던 우여곡절과 경험, 나름대로 갈고닦은 저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이를테면 '한국 고전 번역의 천로역정'이랄까요. 동시대와 후대의 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 번역을 하자니 역사 기록물에 나오는 관직을 비롯한 숱한 용어 하나하나의 정확한 의미를 찾고 그것을 영어로 정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번역 과정에 기초적으로 정리돼야 할 용어 사전 분량도 자연스럽게 쌓이고 있습니다."

―외로운 작업이다 보니 학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육과 학문을 하면서 실학(實學)이 아닌 허학(虛學)을 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외국에 나가서까지 공부하고, 또 영문학자가 그렇게 많아도 고전을 번역할 인재는 구하기 어려우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어요. 실학의 관점에서 외국어 교육에 대한 근본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 문화를 수출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해야 합니다. 이제 고전 번역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문학 또한 서구의 르네상스처럼 부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학문을 해야 합니다. 영문학자라고 해서 서양 시인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학문과 문화,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작은 벌집 구멍 속'에 갇혀서 학문하거나 전문가연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보다 삼성이 더 유명하다면 마냥 기뻐할 일인가. 상품만 수출하고 문화를 수출하지 못하면 장사꾼의 나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열매보다 뿌리를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가 돼야 하고, 노벨 문학상 타기를 바란다면, 심사위원들이 한국에 무슨 문학 전통이 있어서 나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도록 우리 고전을 번역하고 소개해야 합니다."

'피아노와 거문고'. 최 교수가 1977년 펴낸 시집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예언하는 듯했다. 서양과 동양을 은유한 두 용어에서 짐작하듯, 출발점은 한국 문학이었고 하와이대학, 컬럼비아대학, 뉴욕시립대학에서 18년 동안 유학하며 수학한 영문학을 거쳐서 다시 한국 문학으로 돌아온 작가다. 하와이 대학 학부 시절에 썼던, 창조적 열정을 가진 젊은이(본인)의 고뇌를 읊었던 영시 '고백'으로 (대학)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스승이 컬럼비아대학원에 추천, 학문 여정에 올랐다.

시와 소설을 결합한 언어가 주인공인 '詩說(시설) 冷鬼志(냉귀지) LANGUAGE'는 제1회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랩'의 원조라고도 평가받는 문학작품으로, 이 작품을 분석한 논문이 여럿 나왔다. '수만리를 헤엄쳐 외딴 섬 백사장에 알을 낳고 바다로 묵묵히 돌아가는 소리 없는 일꾼 왕거북'이 자신의 운명인 듯 최 교수는 적고 있다. 남의 말을 배우며 본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냉귀지' 속의 앵무새는 또 무엇인가. 마치 허학 속에 학문하는 이들을 빗대는 것 같았다.

-조선일보 2012.11.0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2/2012110201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