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1-26 16:20
나의 애장품 <11> 건축가 김원의 부적

“조선조에 부적을 만들려면 반드시 목욕재계를 하고 밤 12시에 무릎 꿇고 그렸죠. 대가를 바라거나 탐욕이 가미되면 귀신이 벌을 준다고 알았으니 그만큼 순수한 염원이 담긴 그림들이에요.”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 명인 광장건축환경연구소 김원(69) 대표는 부적을 모은다. 베개 밑이나 품 안에 은밀히 넣어 다니는 작은 종이쪽지가 아니라 조선시대 왕실이나 대갓집에서 벽에 붙이던 큼지막한 길상 그림들이다. “종교적인 믿음에서 모은 건 아니죠. 가톨릭 신자가 이런 걸 모은다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걱정하셨지만, 그저 우리 그림들이 좋아서 모은 거예요. 신앙을 넘은 예술적 가치를 보는 거죠.”


김 대표가 부적 수집을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 인사동에서 비싸게 산 조선시대 목가구에 작은 목판이 덤으로 딸려 왔다. 벼락맞은 대추나무 목판(사진)에 정교하게 새겨진 민화풍의 매와 해태 그림은 다름 아닌 부적이었다. 친근하면서도 치밀하게 새겨진 그림 속에 담긴 기복의 염원에 우리 민족의 매력을 느꼈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목판을 만들어야 효험이 있다는 게 웃기죠. 괴이하고 엽기적인 어감이 미신 같지만, 과학적으로 대추나무가 벼락을 맞는 순간 충격으로 조직이 치밀해져 조각하기 좋은 재질이 되거든. 그런 미신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이 우리 민족의 개성인 것 같아요.”

부적은 그의 전공인 건축과도 무관하지 않다. 풍수지리상 길지(吉地)를 찾을 때 그리는 명산도가 부적의 일종인 것. “공학도가 풍수지리를 믿느냐고 하는데, 산에 다니면 심마니들을 만나거든. 그들이 훈수해 준 자리에 텐트를 치면 다음날 몸이 개운하고, 내 고집대로 치면 꼭 몸이 안 좋아. 땅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이 분명 있는 거지. 풍수지리가 과학임을 깨달았죠. 내가 명산도를 얼마나 훌륭하게 썼는지 알아요? 5공화국이 정통성을 세우려고 독립기념관을 지을 때 마땅한 땅이 없어 애먹었거든. 그때 흑성산 터를 내가 잡은 거야. 그 덕에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살기 좋아진 건지도 몰라.(웃음)”


아들이 불효할 때 붙이는 부적, 소원성취의 내용을 일일이 동전 안에 기록한 부적 등 다양하지만 삼재(三災) 독수리가 가장 신통하다고. “제자가 집안 반대로 결혼을 못한다며 이걸 사진 찍어 품고 다니는 거야. 아예 원판을 빌려줬죠. 무사히 장가를 들더니 돌려주더군. 지금은 알 만한 집 아들이 이혼을 해 고민이길래 그 집에 갖다놨어.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가만 있는 것보다 잘 해보겠다는 염원이 있으니 잘될 확률이 높지 않겠어요.”

곳간을 지키는 개 부적은 가장 아끼는 그림이다. “저 얼굴 좀 봐요. 나름 무섭게 그린다고 그린 건데 얼마나 귀여워. 저게 바로 한국인들의 심성인 것 같아. 우리 민예품들이 귀중한 게 많은데 가치를 몰라 사라져 가니 안타까워. 그래서 나라도 모으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