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16 11:32
새 복합문화공간으로 뜨는 기업 도서관
   http://www.seouland.com/arti/culture/culture_general/2089.html [144]

(사진1)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사진2) 이태원의 뮤직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제공
(사진3) 현대카드사가 세운 청담동의 트레블라이브러리.
(사진4) 인터파크 ‘블루스퀘어 북파크’ 과학토론장
(사진5) 에스티유니타스 ‘키즈스콜레 라운지’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등 도심 금싸라기 땅에 12개 기업 도서관.

삼성동 코엑스몰 중앙에 거대 책장이 들어섰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이다. 쇼핑몰의 길은 도서관으로 향하도록 설계됐다. 모든 행위가 책으로 귀결한다. 오늘 하루 화려했던 소비의 기억이 순결한 추억으로 마무리되는 기분이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오래 머물러도 된다. 5만여권의 장서와 6000여권의 잡지가 준비됐으며, 음료를 가지고 와도 괜찮다. 개장 2주째, 내내 빈자리가 없다.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정장의 직장인들, 노트를 정리하는 여성들, 토익 교재를 펼친 대학생까지 이용객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을지로에서 강남까지, 기업이 세우는 천국
보르헤스가 말했다. ‘천국은 필시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오늘날의 도서관을 떠올려보면, 천국의 창조주는 기업이다. 도심의 금싸라기 땅에 대기업들이 나서서 도서관 기둥을 올리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현재까지 약 12개의 기업 도서관이 생겼으며, 대부분 서울에 있다. 2010년 네이버가 경기 성남시 본사에 세운 그린팩토리, 2013년 현대카드사가 서울에 세운 뮤직·디자인·트레블·쿠킹 라이브러리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기업 도서관은 보통 사회적 공헌의 의미 아래 고객 유입을 목표로 한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이미지 변신도 꾀한다. 현대카드가 이태원에 뮤직라이브러리를 열자 최신 정보통(힙스터)들이 몰리며, 한동안 해시태그를 붙인 도서관 사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쏟아졌다.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해당 기업이 발급하는 신용카드가 필요했고, 방문객들은 도서관 카드 발급받듯 현대카드를 신청했다.

신세계가 만든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도 쇼핑객들을 모으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코엑스몰에 있는 업체 관계자들은 “매장 유입객이 늘었음을 체감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 밖에도 현대차는 ‘현대모터스튜디오 자동차 라이브러리’를 4개 운영한다. 씨제이 씨지브이(CJ CGV)와 쉐라톤워커힐호텔도 도서관을 만들었고, 대신증권도 명동 사옥에 도서관을 열었다. 케이이비(KEB)하나은행 본점인 을지로 사옥에도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며, 올해 완공을 목표로 도서관 터를 다지는 기업 소식이 잇따라 들려온다.


이색 도서관으로 ‘힐링’하러 가는 사람들
이런 기업의 움직임에 업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기업의 매출 확장이나 이미지를 좋게 하는 수단으로 도서관이 활용되며, 전통적 도서관 그 이상의 공간적 의미를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식음료·강연 사업 등의 결합으로 시작된 것이 오늘날 기업 도서관인데, 1990년대만 해도 점자도서관, 정보통신(IT) 도서관, 어린이 전용 도서관 등이 ‘이색 도서관’으로 소개된 것을 보면 큰 변화다.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는 기업 도서관을 두고 “아름다운 외관 이상으로 도서관 운영 방식과 체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책의 선별부터 조직관리 서비스, 사서의 존재 등 공공도서관이 지켜온 원칙과 기본 철학이 있는데, 도서관다운 바탕 위에 특별함을 더하는 것이 공공 부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사람 손이 닿는 자리까지만 꽂혀 있다. 그 밖의 책은 장식용 모형이다. 책장의 빈 곳은 시민들의 기부로 채워나갈 예정이지만, 이는 책의 질이 아니라 양에 초점을 두는 것이므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 들렀다는 직장인 김선우(42)씨는 “기업이 도서관을 만드는 데는 의도가 있지 않겠나” 하며 의문을 보이면서도 “한달에 책 한권 읽기 힘든 현실인데, 잠시 휴식하는 김에 들춰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주부 임아무개(38)씨는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만남의 장소로 적절해 보인다. 아이들과 새로운 환경 속에 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고,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고 말했다.

영화·요리·과학·만화 등 특별한 도서관 속으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는 도서관은 도시 방랑객에게는 물론, 주말마다 갈 곳을 찾는 가족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자 여행지이다. 특히 여행, 요리, 디자인, 영화, 문학 등 전문 영역을 다루는 오늘날 도서관들은 공간 그 자체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인터파크 카오스재단이 지난해 12월에 한남동에 연 ‘블루스퀘어 북파크’에는 10만여권의 과학책과 인문학책을 갖췄다. 오는 8월31일까지 목요일마다 과학토론장을 연다. 예스24는 지난 5월 서교동에 ‘홍대던전’을 열어, 변방에 있던 라이트 노벨(애니메이션 풍의 장르소설) 독자들을 불러들였다.
강남구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는 요리책만 1만권을 갖춘 요리 전문 도서관이다. 값비싼 외서와 잡지, 국제요리전문가협회에서 주는 요리책 상을 받은 책까지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현대카드가 선정한 조리법을 보고 ‘재료 키트’를 사면 현장에서 바로 요리도 할 수 있다.

중구 명동의 씨네 라이브러리는 연인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당일 영화 관람권을 가져가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다가 사진 찍기도 좋다. 현재 시네마 클래스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고, 8월28일까지 영화인을 꿈꾸는 청춘들을 위해 강연도 열 예정이다.
한국만화도서관(디지털 만화 규장각)은 한국만화박물관 2층에 있는 만화책 전문도서관이다. 어린이 교육서적을 비롯해 27만여권의 책을 갖췄고 언제든 읽을 수 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교육 플랫폼 에스티유니타스가 내놓은 ‘키즈스콜레 라운지'도 있다. 맥밀란 등 해외 유명 출판사, 보림과 비룡소 등 우수 어린이전문출판사의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사서 겸 평생교육 디자이너가 상주해 교육상담도 해준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는 미술관 같은 도서관에서 6000여권의 국내외 그림책을 볼 수 있다. 현재 칼데콧 상을 받은 작가 12명의 원화와 그림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획전, ‘칼데콧이 사랑한 작가들’이 열리고 있다. 25일까지.



- 한겨레신문. 전현주 객원기자. 2017.06.16